예컨대 국정원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은 과거사법에 규정된 ‘건국 이후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발생한 인권 침해 사건’에 해당한다. 이 중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은 이미 검찰 및 경찰의 조사 대상으로도 결정됐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몇 개 기관이 동시에 조사를 벌이는 것도 모자라 과거사법에 따라 설치되는 별개 위원회가 또 조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럴 경우 공권력의 낭비와 비효율은 뻔하다. 조사 대상자로선 오전에 이 기관에서 조사받고, 오후에는 저 기관에 나가야 하는 일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다고 과거 사건의 모든 의혹이 해소된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나라만 온통 시끄러워지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국가기관들이 저마다 진상 규명에 나선다면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사안에 따라서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적지 않다. “잘못되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역사 훼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의혹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은 어두운 과거를 씻고 미래를 향한 통합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상 규명의 방법과 절차부터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사법을 합리적으로 고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여야는 서둘러 과거사법 수정 논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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