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3년 한일 첫 정상회담

  • 입력 2005년 1월 10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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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1983년 1월 11일 밤, 서울 삼청동의 한 요정에서 어설픈 한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이크를 잡은 이는 일본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건너편에서 술잔을 돌리는 이는 한국의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이었다.

이날 중앙청에는 광복 후 처음으로 일장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게양됐다. 한일 정상 간 첫 공식 회담이 열린 것.

국민감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일제의 한국 침략을 ‘진출’로 규정한 역사왜곡 교과서가 등장하면서 독립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던 시절이었다. 회담 전날에는 광화문에 세운 환영아치가 훼손되기도 했다. 정부는 당시 흔하던 환영인파 동원을 포기했다.

하지만 한일관계의 ‘업그레이드’는 양국이 공감하는 바였다. 일본 우익의 선두주자인 나카소네 전 총리는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동북아 안보에서의 일정 역할’을 부탁받고 야심을 키우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급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유력 경제인인 세지마 류조(瀨島龍三) 씨를 한국에 밀사로 파견했다. 세지마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육사 선배로 압축성장 정책을 조언한 인물. 그는 한국에 줄 ‘선물’을 40억 달러 차관으로 정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방한하자마자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공식 만찬에서 ‘양국 간의 불행한 과거’를 인정하고 한국말로 건배를 제의하는 등 ‘친한파’의 면모를 과시했다. 삼청동의 질펀한 술자리도 그의 ‘립서비스’에 감명 받은 전 전 대통령이 마련했다고 한다.

패전의 얼룩을 지우고 아시아의 맹주로 거듭나겠다는 나카소네 전 총리의 신념은 이렇게 한국에서 첫발을 디뎠다. 그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오른손으로 한국, 왼손으로 미국의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은 대륙을 쳐다보지 말고 태평양을 보라”고 말했다.

지금은 현안이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가는 ‘셔틀 외교’의 시대이니 바야흐로 ‘동반자’ 단계에 접어든 양국이다. 그러나 아는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정치적 후계자로 밀었던 사람이 바로 나카소네 전 총리인 것을. 이들이 신사참배를 감행하고 군사력 확장을 꾀한 총리라는 점에서 ‘닮은 꼴’인 것을.

김준석 기자 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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