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1년 카네기재단 설립

  • 입력 2005년 1월 3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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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적 삶을 고양시키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그것은 사회와 나누는 일이다. 재산을 안고 죽는 사람은 천국에서 명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는 어느 날 서재에서 이런 각서를 썼다. 그는 1800년대 말 미국 철강 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철강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이민노동자의 아들로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그는 가난하게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인생을 2기(期)로 나눠 살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전기에는 돈을 벌고, 후기에는 그 돈을 나눠주는 것이었다.

각서를 쓰고 얼마 안 돼서 카네기가 철강회사를 4억 파운드에 팔았다는 뉴스가 미국 재계를 흔들었다. 더욱 놀랄 일은 그 돈의 사용처였다. 실업계에서 은퇴한 그는 1901년 1월 4일 매각대금을 모두 털어서 카네기재단을 세웠다. 그는 1902년 워싱턴카네기협회를 시작으로 카네기홀, 카네기멜론대 등 20여 개의 자선 및 교육·문화사업을 벌이면서 18년 여생을 살았다.

경영수완이 출중한 기업가답게 그는 부를 나눠주는 기술에서도 창의력을 발휘했다. 카네기재단은 직접 지원보다는 빈자들에게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 음식을 나눠주기보다는 비료를 제공하고 도서관을 지어주는 식이었다. 그는 “자선은 자비가 아니다”라는 철학에 충실했다.

카네기의 자선활동은 부를 이룬 노력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카네기나 존 D 록펠러 등 당시 이름난 자선활동가들은 산업독점에 대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미국 산업화의 일등 공신이라는 사회적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기업가들이었다.

최근 한 국내 언론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자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부자에 대한 호감도가 10점 만점에 5점에도 못 미쳤다. ‘부를 이룬 노력을 인정하지만 존경하지 않는다’는 응답자가 60%에 달했다. ‘○○억 만들기’ 부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새해마다 “부자 돼라”는 덕담이 오가지만 정작 부자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다.

부를 일군 이들이 ‘나눔’의 미학까지 실천하게 될 때 일반인들이 편견 없는 시선으로 부자를 바라보는 일도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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