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관]‘뉴 스타트’ 출발점은 고백성사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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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직후 좌우이념 대립이 한창이던 1946년 6월 23일. 일제강점기 좌파 독립운동을 벌였던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은 동아일보에 ‘공산당과 그 지도 아래 있는 모든 정치활동을 부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향을 선언했다.

그는 성명서에서 자신이 신봉해 왔던 공산주의의 이념체계와 전술을 전면 부인했다.

나중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정적(政敵)이 되는 바람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1959년)까지 당했지만 그는 이승만 정권의 초대 농림부 장관에 취임해 일했고, 국회 부의장에 올랐었다.

세월을 건너뛰어 2000년 9월. 국내 연예인으로는 처음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Coming-out)’한 직후 탤런트 홍석천은 방송출연을 거부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주가는 오히려 높아졌고, 지난해 10월에는 미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뽑은 ‘아시아의 영웅 2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새해 첫날에 굳이 ‘과거’를 화두로 끄집어낸 것은 다름이 아니다. ‘새 출발’의 전제로서 과거에 대한 ‘고백성사’의 필요성을 한번 되짚어보고 싶어서다.

때마침 작년 연말쯤 여권 핵심부로부터는 새해 국정운영 기조가 ‘경제 올인(All-in)’과 ‘뉴 데탕트’가 될 것이란 얘기가 전해져 왔다. 이 소식에 “나라를 위해 제발 좀 그래주었으면…”이란 기대에 젖었던 것은 경제난 속에 부대끼고 고달팠던 독자들이나 필자나 마찬가지였을 듯싶다.

문제는 이런 기대어린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석연치 않은 의문이 남는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경제난의 원인을 ‘보수언론의 과장’과 ‘재벌의 엄살’로 돌렸던 정부 관계자들의 경제 인식이 왜 바뀌었는지, ‘개혁’과 ‘실용’의 함수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방향전환의 궤적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아직도 “바뀌었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한다는 청와대발(發) 전언은 노 대통령이 누구에게도 있을 수 있는 시행착오를 인정 않으려는 고집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게 한다.

더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소한 정합(整合)성 있는 설명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여권의 방향선회가 자칫 국민들에게 ‘전술적 변신’이나 ‘작전상 후퇴’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연말 정국을 달구었던 열린우리당 이철우(李哲禹) 의원의 조선노동당 가입 의혹 논란은 고백성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 같다. 그가 다음처럼 명쾌하게 지난 일을 고백했더라면 불필요한 논란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당시 절망적 상황에서 사회변혁은 좌파적 방법론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생각이 잘못됐음을 인정한다. 나는 자유민주체제와 시장경제를 신봉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시행착오를 반복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20세기 최고 정치지도자로 꼽히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도 취임연설(1933년 3월)을 통해 경제파탄 상황을 인정하고 “진실을 말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 것이었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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