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7년 대인지뢰 금지협약 체결

  • 입력 2004년 12월 2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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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면 어떡해.”

“네가 가랬잖아.”

“가까이 오지 말랬지, 언제 가라고 그랬어.”

“…….”

“살려주세요.”

“울지 마라, 야.”

2000년 최고 흥행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명장면. 비무장지대(DMZ)를 수색하다 대인지뢰를 밟은 한국군 이수혁 병장(이병헌)과 북한군 오경필 중사(송강호)의 대화.

관객은 웃음을 터뜨리고 주적(主敵) 관계였던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한반도 냉전의 상징인 DMZ의 지뢰 덕분에.

이런 낭만적 역설을 현실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실제 지뢰를 밟으면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입 밖에 낼 틈도 없이 발목이 잘리거나 몸통이 날아가 버린다.

지뢰는 방어용 무기다. 그러나 광란의 살인자이기도 하다. 핵과 미사일 공격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만 지뢰는 그런 능력이 없다. 베트남전쟁에서 지뢰 때문에 다치거나 숨진 미군 6만4000명 중 90%가 미군이 묻은 지뢰의 희생자라는 통계가 있다.

더구나 지뢰 피해자의 80%는 민간인이다. 특히 연평균 피해자 2만4000명 중 어린이가 약 1만 명(41.7%)이라고 국제적십자사는 밝혔다. 전쟁 중 피해자보다 전후 피해자가 10배나 된다. 이래서 ‘전쟁은 유한하나 지뢰는 영원하다’는 말도 생겨났다.

대인지뢰 1개를 만드는 데 3∼5달러밖에 안 든다. 그러나 제거 비용은 개당 300∼1000달러가 필요하다. DMZ와 그 주변에 매설된 약 100만 개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려면 3조∼10조여 원이 든다.

인간이 설치했으나 인간의 통제력에서 벗어나 버린 지뢰. 1997년 12월 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채택된 ‘대인지뢰전면금지협약(오타와 협약)’은 이런 비극적 역설을 극복해 보려는 국제적 노력의 결정체다.

협약 가입국은 현재 144개 국.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주한미군)의 예외적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며 동참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주요 지뢰 보유국도 ‘미국이 가입하지 않으면 효율성이 없다’는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다. 물론 남북한도 미가입국.

한반도 지뢰의 비극적 역설이 스크린 속 남북 병사의 이야기처럼 낭만적으로 풀릴 날은 언제일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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