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 칼럼]방송委의 원초적 부실

  • 입력 2004년 10월 29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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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가 갖고 있는 막강한 권한은 이번 지상파 방송사 재(再)허가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KBS MBC SBS 3대 지상파방송은 한국 방송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방송계의 ‘지배세력’이다. 케이블방송, 위성방송을 켜도 이들이 운영하는 채널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온다. 이들은 수조원대의 황금시장이라는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사업에까지 진출하면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방송과 통신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므로 3대 지상파의 ‘방송 권력’은 앞으로 더 비대해질 것이다. 방송위는 이런 방송사를 문 닫게 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으니 대단한 힘이 아닐 수 없다. 방송사들은 3년마다 방송위로부터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며 재허가를 얻지 못하면 방송을 내놓아야 한다.

▼‘두 얼굴’의 까닭은▼

이번 재허가 과정에서 강원민방은 실제로 탈락 위기에 몰렸다. MBC SBS도 재허가 보류 대상에 올랐다. 방송사들은 이번에 허가를 받더라도 3년 뒤 또 있을 재허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방송위 앞에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다. 방송사를 야단치는 방송위는 단호해 보인다.

이런 서슬 퍼런 자세는 방송위가 이전에 보였던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모습과 비교된다. 판이한 ‘두 얼굴’을 보는 듯하다. 지상파 3사의 탄핵방송 편파시비가 불거졌을 때 방송위는 ‘판정 내리기’를 피하고 한국언론학회에 내용분석을 의뢰한 다음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탄핵방송은 불공정했다’는 언론학회의 보고서가 나오자 방송위는 ‘꼼수’를 발휘했다. 탄핵방송은 심의대상이 안 된다는 각하결정을 내리면서 심판관의 의무를 회피한 것이다.

최근 위성DMB의 지상파 재전송 문제를 놓고 결정을 내려야 했을 때 방송위는 ‘나중에 다시 검토할 것’이라며 뒤로 미뤘다. 이처럼 유약한 방송위가 방송사 재허가에는 어떻게 무시무시한 얼굴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들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방송위의 구성방식이다. 방송위원 9명은 대통령이 3명을 추천하고 국회가 6명을 추천한다. 집권당이 되고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면 방송위원 5명 이상의 추천권이 확보된다. 방송위 의결은 9명 가운데 절반이 넘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집권당이 되면 방송위를 장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방송위는 KBS MBC EBS의 경영진을 선임하고 방송사 허가취소를 할 수 있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방송위를 손에 쥐면 정치권이 방송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방송위원들이 자신을 뽑아준 정당이나 대통령의 이해를 대변해 온 징후는 쉽게 포착된다. 탄핵방송이 편파적이었다는 보고서가 나오자 판정을 기피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이해와 직결된 탄핵방송에 징계를 가하는 것은 이들로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여당 몫으로 방송위 부위원장이 된 학자 출신의 인사는 체통을 잊은 채 보고서를 공개 비난했다.

이처럼 방송위 구성은 정치적 독립성 확보에 원초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요즘 방송사 재허가 과정을 겉으로 드러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방송위가 만약 재허가를 무기로 특정방송 ‘길들이기’와 ‘혼내주기’에 나서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근본 수술 필요하다▼

또 하나의 결함은 방송위원 가운데 지상파 출신이 여럿 포함되어 있는 점이다. 이런 인적 구성은 방송위가 지상파의 이해를 대변하고 방송위의 독립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위성DMB와 관련된 결정에서는 방송위가 위성DMB의 경쟁자인 지상파 편을 드는 결과가 나타났다. 결국 방송이 ‘정치권력’과 ‘지상파 권력’의 두 축에 의해 끌려 갈 가능성이 상존해 있는 것이다.

방송위를 근본적으로 수술할 길을 찾아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당이 방송위원을 자기 몫으로 챙기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 객관적이고 중립성을 확보한 전문가들이 방송위를 맡도록 해야 한다. 방송위를 정치로부터 멀찌감치 분리시켜 국민 신뢰를 쌓도록 하는 일이 시급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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