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계열 독립운동 재조명]유공인정-포상 기준

  • 입력 2004년 8월 26일 18시 44분


코멘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좌익계열 독립운동가를 재평가해 포상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학계에서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학자들은 이미 사회주의 독립운동사에 대한 연구가 상당 수준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자칫 이런 연구 성과들이 정치 쟁점화되거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비화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유영익(柳永益·독립운동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는 “학문적 차원에서의 재평가와 정부 차원의 재평가는 다른 문제”라며 “북한에서 우익 독립운동가를 평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남한이 좌익 독립운동가를 포상한다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경일(金炅一·사회주의운동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도 “남북 대치상황을 무시한 채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정부 차원에서 한꺼번에 풀겠다고 접근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상당수가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이념을 택했다는 점을 이해시키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우선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 서훈할 경우 대한민국의 정통성 수호라는 명확한 원칙을 세우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즉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광복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거나 6·25전쟁에 직간접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서훈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현희(李炫熙·독립운동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우선 8·15광복 후 북한체제를 택해 김일성 정권에 협력하고 6·25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윤해동(尹海東·한국사)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도 “학계에선 대략 8·15광복 전에 숨지거나 북한정권에 직접 관련되지 않은 좌파 운동가들에게는 일관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모아진 상황”이라며 오히려 정부 보훈정책의 비일관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훈처는 그동안 납북된 김규식 조소앙에게는 서훈을 하고도 같은 중도좌파로 남한에서 암살된 여운형에겐 서훈을 하지 않았고, 공산주의자로 죽은 이동녕에게는 서훈을 하면서 이미 1920년대에 전향한 조봉암에게는 서훈을 하지 않은 무원칙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나서서 좌익 독립운동을 평가하려는 것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한 원로학자는 “진정한 역사 화해를 위해서는 보수 우익 인사들이 좌익 인사들의 독립운동을 재평가해야 한다”면서 “안 그래도 좌파정권 아니냐는 소리를 듣는 현 정부가 나서서 서훈할 경우 정권이 바뀌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도-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서훈 상황
이름공적 및 경력건국훈장 서훈
안재홍민족언론운동, 미 군정 민정장관, 6·25전쟁 때 납북1989년 대통령장납북 독립운동가 첫 인정
김규식임시정부 부주석, 6·25전쟁 때 납북89년 대한민국장
지석용고향인 평남 대동군에서 3·1운동 주도 90년 독립장북한 잔류 독립운동가 첫 인정
김준연신간회 창립, 1920년대 조선공산당 재조직91년 애족장
이동휘임시정부 국무총리, 고려공산당 상하이파 결성95년 대통령장
조봉암비밀결사 흑도회 참여, 조선공산당 참여, 진보당 창당, 5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안함
여운형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조선건국동맹 조직, 조선인민당 창당, 47년 피살포상 신청했으나 국가보훈처가 거부
김재봉3·1운동 주도, 조선독립단 활동,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지냄포상 신청 안함
조동호2·8독립선언 주도, 조선공산당 창당, 근로인민당 참여, 54년 지병으로 사망포상 신청했으나 보훈처 거부
장재성광주학생운동 주도, 항일결사 조직, 광복 후 3차례 월북 후 구속, 50년 좌익계 수감자와 함께 총살포상 신청했으나 보훈처 거부
김두봉조선독립동맹 조직, 북조선노동당 위원장, 58년 북한에서 처형됨포상 신청 안함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좌익인사 기록 적극발굴”▼

국가보훈처는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좌익 독립운동가의 명예회복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26일 좌익 독립운동가를 집중 발굴하고 이들의 공적을 재평가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보훈처는 우선 올해 안에 ‘독립운동 사례 발굴분석단’을 구성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좌익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낼 방침이다.

또 발굴분석단은 이미 파악된 좌익 독립운동가의 공적도 최대한 이념 부분을 배제한 뒤 재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동안 사회주의 공산주의 활동으로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했던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1886∼1947), 유정 조동호(榴亭 趙東祜·1892∼1954) 선생도 각각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활동, 2·8독립선언 주도 등의 공적을 인정받을 전망이다.

하지만 보훈처는 북한 정권의 수립 및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유공자에서 제외하는 기존 공훈심사 기준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현재 심사기준으로도 안재홍 선생 등 납북 독립운동가와 고려공산당을 창당한 이동휘 선생 등 좌익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은 이뤄지고 있다”며 “심사 기준을 바꾸는 것보다 관련 자료를 더 많이 수집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주요 인물 행적과 평가▼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좌익계열 독립운동의 복권과 포상 방침을 밝힘에 따라 이들 독립운동가의 활동과 행적, 그리고 포상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지금까지 포상하지 않은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뿐 아니라 광복 후 활동까지 포함해 엄밀하게 재평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포상 여부를 결정하는 국가보훈처는 지금까지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을 계속한 운동가에게는 포상하지 않았다.

▽학계의 평가=좌익 활동으로 인해 독립운동의 공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대표적 인물로 학계는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을 꼽는다. 몽양의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광복 후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정부 구상도 평가하는 것. 학계는 또 몽양이 좌파 성향을 띠었지만 사회주의자는 아니었고, 미군정도 그의 대중적 역량을 높이 샀다고 본다. 그는 1947년 서울에서 좌우합작을 반대하던 정파에 의해 암살됐다.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은 젊은 시절 조선공산당에 참여하고 고려공산청년회 대표로 소련 코민테른 총회에 참석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 그러나 광복 후 박헌영에게 공산주의 활동의 모순을 지적하는 공개서한을 보낸 뒤 공산주의 운동을 중지했다. 학계는 조봉암이 광복 전에 이미 전향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만 정권 시절 급진적 노선의 진보당을 창당,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이승만을 정치적으로 압박했던 그는 1959년 ‘국가변란’을 기도한 간첩 혐의로 사형됐다. 정치적 희생자라는 게 학계의 평가다.

고려공산당에서 활동했던 유정 조동호(榴亭 趙東祜)는 여운형과 함께 건국동맹을 결성해 활동하다 수감됐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사회주의 계열의 근로인민당에 참여했지만 건강이 나빠져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다 1954년 사망했다.

이들과 다른 그룹으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으나 광복 후 북으로 넘어가 활동하다 숙청된 인사들도 있다.

의열단과 조선민족혁명당을 조직해 무장독립운동을 하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자 월북한 김원봉(金元鳳)이 대표적 인물. 북한에서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냈지만 1958년 숙청됐다. 한글학자로 이름 높은 김두봉(金枓奉)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으나 광복 후 북에서 북조선노동당 위원장 등을 지내다 역시 1958년 처형됐다.

▽정부의 포상 상황=국가보훈처는 1990년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포상을 해 왔다. 1995년 이동휘와 계봉우가 포상받았다. 올해에는 고려공산당과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결성 등에 참여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 윤자영을 건국훈장 독립장 포상자로 결정했다.

국가보훈처가 밝힌 포상 기준은 ‘독립운동의 뚜렷한 공적이 있으면서 대한민국 정부에 어떤 방식으로든 위해를 가한 일이 없고 북한 정권에 동조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 맞지 않아 포상 신청이 거부된 대표적 인물이 여운형이다. 지난해 유족이 포상 신청을 했지만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독립운동의 공은 인정되지만 광복 후 북한을 방문하고 신탁통치를 찬성한 전력 등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후 좌익계열 조직에 계속 몸담았던 조동호도 포상 신청을 했지만 거부됐다. 이 밖에 만주 등지에서 항일 무장운동을 했던 김시현,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사법부장을 지냈으나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에 참여했던 김한 등도 신청했으나 포상받지 못했다.

포상 신청은 유족이나 제3자라도 그 공적과 행적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보훈처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로서 포상받은 인물은 100명 선. 그러나 조봉암 김원봉 김두봉 김철수 안광천 등은 아직 포상 신청이 이뤄지지 않았다.

포상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위원회는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학자 23명과 광복회 회장 등 생존 독립지사, 공무원 등 총 27명으로 구성되며 전원 합의로 결정한다.

한편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발표에 대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모두를 포상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