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로펌이 국선변론 왜 합니까”

  • 입력 2004년 8월 18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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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권리’라는 낱말을 구성하는 한자 ‘權(권)’은 상형문자다. 나뭇가지 위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균형을 의미한다. 나뭇가지가 연약하거나 새가 조금이라도 무거우면 ‘權’은 무너진다.

정의의 여신이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도 비슷하다. 형평을 맞추기 위해서다.

국가 권력과 시민 권리의 관계는 늘 불안하다. 법을 만들고 적용하고 집행하는 현실적 힘이 국가 권력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법조인이다.

변호사인 법대 교수가 써 화제가 되고 있는 책 ‘헌법의 풍경’에도 “법조인 본연의 임무는 고객을 대리해서 국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요즘 ‘잘 나가는’ 로펌(법률회사)의 풍경은 이와 거리가 멀다. 힘이 센 권력을 도우면서 힘없고 가난한 시민은 외면한다. 최근 이어진 민감한 사건과 국선 전담 변호인 모집에서 이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대법원은 7월부터 이달 10일까지 국선 전담 변호인 신청을 받았다. 국선 전담 변호인은 자기 사건을 따로 맡지 않고 법원 내 사무실에 상주하면서 국선 변론만 전담하는 변호사.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좀 더 나은 변론을 제공하기 위해 대법원이 고심 끝에 마련한 제도다.

지원자는 모두 17명. 그러나 10대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국선 전담 변호인의 보수는 1건에 15만∼75만원. 매달 평균 25건 정도 맡게 되므로 375만∼1875만원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그들의 수입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모양이다.

변호사가 10여명에 불과한 중소형 법무법인과 ‘무소속’인 개인 변호사들만 신청했다.

대형 로펌의 이런 태도는 그들의 ‘권력과의 관계’와 대비된다. 최근 논란이 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행정수도 이전 헌법소원 사건에서 대통령과 청와대, 건설교통부 등의 법률 대리는 모두 10대 대형 로펌이 맡았다.

권력에 가깝고 권리에 먼 대형 로펌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이수형 사회부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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