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24>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8월 6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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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쪽을 쪼개듯(9)

“신의 헤아림이 대왕의 뜻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호치와 폐구를 뺀 나머지 옹(雍) 땅은 마치 머리 잃은 배암같이 되었습니다. 장함과 장평을 성안에 가두어둘 수 있는 군사만 남겨 호치와 폐구를 에워싸고 있게 하고 나머지 군사로는 옹 땅의 모든 성읍(城邑)과 관진(關津)을 거두어들이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와 같은 한신의 말에 한왕 유방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과인의 뜻도 그러하였소. 다만 그리 많지 않은 군사를 여러 갈래로 나누는 꼴이 되어 뜻밖의 낭패가 있을까 두렵소.”

“그 일이라면 신이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옹왕 장함은 전에 진나라 장수였을 적에 수십만 진나라 장정들을 이끌고 함곡관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정들은 싸움터에서 죽거나 항왕이 신안(新安)에서 항병을 산 채 묻을 때 모두 땅에 묻혀 죽고, 저만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항왕의 고임을 받아 옹왕이 되었으니 관중에 있는 그 장정들의 부형이나 처자가 어찌 그를 미워하지 않겠습니까? 거기다가 장함이 옹왕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린 지도 그리 오래지 않아 마음으로 따르는 군민(軍民)도 거의 없습니다. 아래위로 미워할 뿐, 그를 위해 싸워줄 사람이 없는데 우리에게 무슨 뜻밖의 낭패가 있겠습니까? 신의 소견으로는 장함과 장평을 호치와 폐구에 가두어두고 나머지 군사로 옹 땅을 평정하되, 먼저 진창 서북에 있는 군현(郡縣)을 차지한 다음 다시 폐구 동쪽으로 군사를 내어 함양까지의 성읍을 모두 거두어들이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하면 한 달도 안돼 옹 땅은 모두 우리 한군의 깃발 아래 들게 될 것입니다.”

그제야 한왕이 환하게 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소. 장졸들을 부리는 일은 내 이미 대장군에게 모든 것을 맡겼으니 알아서 하시오.”

이에 한신은 역상((력,역)商)과 주가(周苛)에게 각기 군사 1만명씩을 딸려 호치와 폐구를 에워싸고 있게 하고, 남은 장졸들을 풀어 먼저 호치 서쪽의 옹 땅을 평정하게 하였다.

낭중 번쾌는 군사 5000과 더불어 백수(白水) 북쪽으로 나아가 서현(西縣)과 옹현(雍縣)을 거둔 뒤 태성(4城)을 거쳐 다시 호치로 나오도록 하였고, 장군 조참은 5000 군사로 하변(下辯)과 고도(古道)의 땅을 아우른 뒤 옹현 태성을 거쳐 호치로 돌아오게 하였다. 또 장군 주발은 회덕(懷德) 괴리(槐里)를 거둔 뒤 다시 호치로 돌아오게 하였으며, 중알자(中謁者) 관영은 남은 군사를 이끌고 한왕과 대장군 한신 곁에 머물며 변화에 대응하게 하였다.

그렇게 배치를 마친 한신은 한왕과 더불어 호치 부근에 진채를 벌이고 중군(中軍)이 되어 머물렀다. 그런데 장수들이 떠난 지 열흘도 안돼 번쾌가 보낸 군사 하나가 달려와 한신에게 알렸다.

“번 낭중께서는 백수 북쪽에서 서현의 현승(縣丞)이 이끄는 대군을 무찔렀고, 옹현 남쪽에서는 옹왕이 기른 날랜 기병을 쳐부수었습니다. 이제 태현(4縣)으로 가고 있는데, 그 성이 높고 성벽이 두터워 은근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장군께서 뒤를 받쳐 주셨으면 합니다.”

이에 한왕과 대장군 한신이 있는 한(漢) 중군은 태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태성에 이르러 보니 하변과 고도를 평정한 조참이 먼저 와 있었다. 거기다가 오래잖아 회덕과 괴리를 거둬들인 주발이 또한 태성으로 오니 한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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