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우아한 유혹의 기술

  • 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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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스티븐 비진체이 지음 윤희기 옮김/337쪽 9000원 해냄

영어판이 나온 지 40년 가까이 된 이 책을 읽으며 묘한, 또는 짓궂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토록 뻔뻔스럽고 태연하면서도 우아하게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은, 또한 유혹당하는 척하면서 남성을 유혹하는 기술은 어디서 온 걸까. 혹시 제1차 세계대전 이전 헝가리와 체코 등을 영유했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우아한 문화전통은 아니었을까.’

실없을 수도 있는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이 책 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비롯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겹쳐져 떠올랐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성에 대한 유혹의 기술’만이 쿤데라와 이 작가의 공통점은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자유화운동의 실패를 체험한 끝에 조국을 빠져나왔으며, ‘제2의 언어’로 작가생활의 성공을 거두었다. 쿤데라는 체코어에서 프랑스어로, 비진체이는 헝가리어에서 영어로.

두 사람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답답한 정치적 상황의 탈출구로 ‘에로스’를 이용한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그렇다면 두 사회에서 ‘자유 외도’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옛 소련의 선물일까.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취임하던 해 태어난 헝가리 소년 안드라스. 어릴 때부터 고모의 엉덩이를 꼬집는 등 유달리 조숙했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인생의 전기가 찾아온다. 진격해오는 러시아군을 피해 거리로 나섰다가 길을 잃고 미군부대에 합류하게 된 것. 미군에게 접근해오는 헝가리 여성들의 말을 통역해주면서 그는 더욱 빨리 어른의 세계에 눈을 뜬다. 부대에 찾아온 글래머 금발여자에게 “담배 1000개비 드릴게요”라고 말한 것이 그의 생애 첫 유혹.

그 뒤 이 ‘어린 난봉꾼’의 행보를 설명하는 것은 그가 사용한 유혹의 어휘를 늘어놓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른다. “저 결심했어요, 오늘 당신에게 나와 사랑을 나누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면 그냥 다뉴브강에 빠져 죽겠다고 말이에요.” “저를 탐해 달라는 것 이상으로 더 다정스러운 말도 있나요?” “내 사랑을 받아주신다면 이 아름다운 골동품 재떨이를 훔쳐서라도 드리겠습니다.” 또는, 그냥 간단히 “매력적이십니다.”

당연히, 스탈린주의의 억압 아래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헝가리의 사회상이 그의 연애담에 교직(交織)된다. 억압정치는 안드라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의 잦은 방문을 받는 ‘가장(家長)’들은 그를 당의 정보원으로 의심한 나머지 아내에 대한 의심에는 이르지 못하기 일쑤였으니까.

그런데, 왜 ‘연상’의 여인에 대한 찬양일까. 책에는 동년배 소녀들과의 풋사랑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거듭된 실패 끝에 교훈을 얻는다. ‘소녀들은 늘 이후의 일을 두려워한다’는 것. 주인공은 소녀들과 두려움을 공유하는 것이 버거웠을까. 이런 상황에서 남자들은 쿤데라의 말마따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생을 선택하기 쉬운 것일까.

원제 ‘In Praise of Older Women’(1965년).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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