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순덕 칼럼]케리와의 삼각관계

  • 동아일보
  • 입력 2004년 7월 30일 18시 48분


내 집을 사 본 사람은 안다. 꼭 연애결혼 같다는 걸. 일단 감정이 끌리면 옆에서 뭔 말을 해도 안 들린다. 대통령 뽑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건 따지고 공약 살피지 않는다. 나중에 당할지언정.
투기목적으로 집 살 때는 중매나 정략결혼과 비슷하다. 뒷날 확실히 이익을 볼수 있는지 온갖 조건 깐깐하게 따진다. 당장 마음에 드는가는 별로 안 중요하다.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구경은, 그리고 외교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그들 몫이지만 우리한테 어떤 득실이 생길지는 따져보고 움직여야 김칫국부터 마신 걸 토해 낼 일이 안 생긴다. 우리나라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미국 대통령 선거는 더욱 그러하다.
▼‘막강戰士’와 남북한 예상문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 존 케리가 전사(戰士)처럼 무장하고 나섰다. 후보수락 연설에서 그는 “강한 군사를 기르고 강한 국제 동맹관계를 이끌겠다”며 필요하면 무력사용을 주저치 않겠다고 했다. 엄마당(黨)이라는 민주당 이미지와 딴판이다. 케리 대통령이 탄생하면 같은 ‘진보적’ 집권당 국가로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보다 한미관계가 좋아질 거라고 예상했던 이들에게는 의외일 수 있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이 달라졌듯 민주당도 예전 그 당이 아니다. 테러와의 전쟁 상황에선 안보를 확고히 할 수 있다고 각인돼야만 대통령이 되는게 가능하다. 민주당 정강 1만6000자 중 한 문장으로 압축된 대한(對韓)정책이 의미심장한 경고로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와 안보 이슈에 관한 공동의 노력을 촉진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적 동맹인 남한과의 관계를 강화하도록 적극 모색하겠다.’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다.
좋은 말씀이라고 좋아하기 전에, 한국 바로 앞에 언급된 일본에 대해선 ‘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한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민주당은 현재의 한미관계를 강하다고 안 친다는 얘기다. 경제와 안보를 적시한 건 여기에 양국간 이견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관해 ‘공동’의 노력을 하겠다는 것도 정치외교적 수사일 뿐 사실은 한국이 잘해야 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굳이 역사적 동맹이라 지칭한 이유를 따진다면 한국이 본래 친미적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다시 그렇게 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다.
악의적 풀이 같은가. 그렇지 않다. 존 F 케네디 정부 시절 국가안보위원회 관리였던 마르쿠스 래스킨의 분석을 보면 명확해진다. 그는 케리가 누누이 강조해온 외국과의 관계 개선 방침이란 ‘어떤 수단을 써서든 외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며 이에 따르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북한과 양자대화로 핵을 해결하겠다는 ‘만만한’ 케리가 대통령 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 민주당 정강은 단호하다. 김정일에 환상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떤 조약을 맺더라도 북핵은 완전히 돌이킬 수 없고 검증가능하게 폐기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특히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은 핵이 알 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에 넘어가는 것인데 이를 막기 위해선 선제공격도 주저 않을 것을 명백히 했다.
▼정략결혼처럼 재봐야 산다▼
이제 한국은 갈수록 태산일지 모른다. 부시 대통령과 무난했다고 할 수 없지만 케리 대통령이 나온대도 간단치 않다. 1994년 민주당 출신 빌 클린턴 대통령이 북핵 제거를 위해 우리측과 상의 없이 북한 폭격 직전까지 갔던 상황이 안 벌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돼도 북핵문제를 마냥 놔두진 않을 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족공조 분단극복 독자외교 자주국방을 주장하기는 쉽다. 아, 대한민국이 미국 입김에 흔들려서야 되느냐고 외치는 건 도덕적으로 옳되 현실적으론 순진한 소리다.
국가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들은 운동권과 달라야 한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정략결혼을 하듯 따지고 또 재봐서 정권의 명운이 아닌, 국익에 이로운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뒷날 어느 정권에서 반(反)국가사범청산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