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회비로 운영되는 적십자사가 사람 생사를 좌우하는 혈액을 이렇게 함부로 다룰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에이즈 양성으로 판명 난 사실을 늦게 등록해서, 과거 병력(病歷)을 조회하지 않아서, 헌혈자 이름을 잘못 입력하거나 혈액 판정을 잘못해서 ‘에이즈 혈액’ ‘간염 혈액’이 유통됐다니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능한 기관이 어디 있는가.
인체의 혈관에 직접 투입되는 수혈용 혈액 또는 혈액제제는 어떤 의약품보다 철저하게 안정성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혈액관리법상 채혈부터 의사가 하도록 돼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채혈은 대부분 간호사들이 하고 있으며, 혈액관리업무의 실무책임자인 전국 16개 혈액원장도 모두 비(非)의료진으로 구성되는 등 혈액관리시스템은 너무도 허술하다. 시장경쟁이 없어 무사안일에 빠진 적십자사가 산하기관을 제대로 감독 못한 것이 아닌지, 그러면서도 혈액원은 혈액을 사업수단처럼 간주하는 이유는 뭔지 묻고 싶다.
넉달 전 복지부가 혈액 관리대책을 내놨지만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책임자에 대한 추상같은 문책 없이 실무자 몇 명만 법정에 세워서는 근본적 개선이 이뤄질 수 없다. 철저한 문책과 함께 정부는 더 이상의 수혈 피해자가 없는지 찾아서 보상함으로써 국민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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