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기억과 편견-반유대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 입력 2004년 7월 2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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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조형물.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축적되면서 영혼에 각인된 증오는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폭력을 낳았고, 이는 다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폭력을 낳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미국 마이애미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조형물.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축적되면서 영혼에 각인된 증오는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폭력을 낳았고, 이는 다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폭력을 낳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기억과 편견-반유대주의의 뿌리를 찾아서/최창모 지음/230쪽 1만원 책세상

한국인에게 유대인은 약소민족의 설움을 나눌 수 있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대상이다. 동시에 나라도 없이 떠돌면서 세계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경탄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구와 중동에서 유대인은 입 안의 가시와 같은 존재다. 서구에서는 과거에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반대로 중동에서는 현재의 삶을 위협하는 가해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불화의 씨앗은 누가 언제 어떻게 뿌린 것일까. 1980년대 이스라엘 히브리대에서 7년간 이스라엘 역사와 히브리문학을 공부했고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이스라엘에 머물렀던 저자는 이에 대한 서구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압축한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란 용어가 등장한 것은 1879년 독일의 저널리스트 빌헬름 마르의 저서 ‘독일주의에 대한 유대교의 승리’라는 책에서다. 셈족(유대인) 대 아리안족(독일인)의 대결이라는 사고를 형성한 이 용어는 그러나 매우 부정확한 용어였다. 셈족은 히브리어 아랍어 아람어를 사용하는 어족을 통칭한다. 또 아리안족도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인도-유럽어족을 뜻한다는 점에서 정확히는 인도인이나 이란인을 뜻한다.

그러나 반유대적 감정은 그 기원이 더욱 오래됐다. 반유대적 기술(記述)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3세기 초 그리스-로마 문명권에서다. 유일신 신앙을 고집하면서 배타적 선민사상을 지녔던 유대인들은 고대 국제사회에서도 유별난 존재로 인식됐다. 유대인에 대한 서구의 증오가 체계화된 것은 기독교의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와의 경쟁관계로 인해 의도적으로 유대인에게 ‘신을 살해한 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이는 중세로 가며 점차 강화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대인을 “자신들의 죄와 우리의 진리에 대한 증언”이라고 규정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구적인 기독교인의 종”이라고 못 박았다.

1096년 1차 십자군원정은 이런 믿음을 먹고 자란 증오의 유전자가 본격적으로 발현된 시기였다.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십자군원정대는 도처에서 ‘그리스도의 적’인 유대인에 대해 전례 없는 학살을 자행했다. 1215년 제4차 라탄테 공의회는 유대인에게 특별히 정해진 옷만을 입을 것을 성문화했다. 1492년 스페인왕국은 모든 유대인을 추방했다. 유럽 최초의 인종주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유대인 거주지역인 게토가 도입된 것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였다.

자본주의의 도래는 이런 종교적 증오를 점차 사회경제적인 것으로 전이시킨다. 토지를 소유할 수 없어 일찍부터 금융업과 전문 직종에 나아갔던 유대인이 아이로니컬하게도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는 그 증오의 유전자가 적절한 사회적 온도와 문화적 습도를 갖춘 정치적 토양에서 가공할 돌연변이로 탄생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역사의 피해자가 역사의 가해자가 되는 소름끼치는 증오의 변증법을 고발한다.

“지독한 독가스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유대인들은 시온주의라는 이름의 강력한 유전자를 배양했고, 이는 팔레스타인 땅에 이식된 뒤 자신이 성장한 거친 토양에서 피를 먹고 자랐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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