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79>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6월 1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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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王이 되어(2)

“숙부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패공을 파촉(巴蜀)으로 보내도 뒤탈이 없겠습니까?”

다시 패공을 죽이라는 범증의 말에 답답해진 항우가 무심코 항백에게 물었다. 하지만 실은 때맞춰 물어준 셈이었다. 항백은 바로 그 일로 조카의 군막을 찾아온 길이었다.

홍문의 잔치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 패공 유방은 그 앞뒤로 공이 많은 장량에게 황금 백 일(鎰·20냥 또는 24냥)과 진주 2말을 상으로 내렸다. 그러나 장량은 패공을 살린 게 모두 항백의 공이라 보았다. 패공에게서 받은 상을 고스란히 항백에게 보내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 소문을 들은 패공도 항백에게 많은 재물을 보내 지난 일을 감사했다.

그런데 항우가 천하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패공은 좋지 못한 풍문을 들었다. 범증이 홍문에서 패공을 죽이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며 항우를 충동질하여 이번에는 패공에게 파촉을 봉지(封地)로 내리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범증이 그 무렵 파촉 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한 것이 그런 풍문을 낳은 듯했다.

패공도 파촉이 어떤 땅인지를 들어 알고 있었다. 놀라 장량을 불러들이고 물었다.

“범증이 항왕을 꼬드겨 나를 파촉에 가둬두려 한다니 이를 어찌 했으면 좋겠소?”

그러나 장량은 크게 걱정하는 낯빛이 아니었다.

“파촉은 감옥이 아니라 패공께서 안전하게 숨을 곳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항왕의 의심을 받지 않고 살아남는 일이 급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아남는 일이 먼저라 해도, 그 땅에 갇혀 다시 관중으로 나올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소?”

그래도 장량은 별로 흔들림이 없었다. 듣기에 냉정할 만큼 잘라 말했다.

“다시 관중으로 나오고 나오지 못하는 것도 목숨이 살고 난 다음에 걱정할 일입니다.”

“아니오. 사람의 삶이란 달리는 말이 벽과 벽 사이의 틈새를 지나가는 것과 같소. 내 나이 이미 쉰 살에 가까우니 파촉에 갇혀 한없이 참고 기다리기는 너무 많은 나이요. 한중군(漢中郡)만이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 그래도 뒷날을 기약할 수 있겠지만, 아니면 차라리 여기서 죽기로 싸워 항왕과 결판을 보는 편이 옳을 것이오!”

그러자 장량도 비로소 정색을 하며 패공을 달랬다.

“한중 땅을 더 얻는 일이라면 달리 길을 찾아보시지요. 다시 한번 항백을 통하여 항왕을 달래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패공도 그 말을 듣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다시 장량에게 많은 보물을 주어 항백을 구워삶게 하였다. 이에 항백이 다시 나섰다. 하지만 뇌물보다는 맞서기 어려운 그 어떤 힘이 고비마다 패공을 돕게 만들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항백은 패공에게 한중을 얻어주기 위해 찾아온 것인데, 항우가 오히려 먼저 그 일을 꺼낸 셈이었다.

“파촉도 관중의 땅이니 대왕이 약조를 어긴 것은 아니나, 그곳에 갇힐 것을 걱정한 패공의 장졸들이 들고 일어날까 두렵소이다. 차라리 한중군(漢中郡)을 보태 주고 한왕(漢王)으로 삼아 남정(南鄭)에 도읍하게 하면 어떻겠소? 길은 험해도 남정은 함양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패공의 장졸들도 죄수가 되어 멀리 유배된 느낌이 덜할 것이오.”

항백이 그렇게 조카의 말을 받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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