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넬슨 만델라 終身刑 선고

  • 입력 2004년 6월 11일 19시 53분


코멘트
“할아버지는 제 삶을 아름답게 바꿔주셨어요.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주셨거든요….”

2003년 85세 생일을 맞은 만델라는 한 소녀에게서 아주 특별한 축하 편지를 받았다.

소수 백인이 남아공을 통치하던 1964년, 그에게 종신형(終身刑)을 내렸던 헨드레크 페르부르트 전 총리의 증손녀가 보낸 것이었다.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그는 ‘아프리카의 빛’이었다. ‘백인에 의한 지배나 흑인에 의한 지배 그 모두를 반대’했던 그는 20세기 인권운동의 상징이다. 350년간에 걸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를 철폐했다.

그는 27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때 수인(囚人)번호 ‘46664’는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모친과 장남의 사망 소식을 철창 안에서 들어야 했던 만델라. 그에게 분노(憤怒)는 ‘힘’이었고, 고통과 수난은 뼈 마디마디에 새겨졌다. 그러나 72세가 되어서야 석방된 그의 일성(一聲)은 ‘용서’였다.

그는 과거사를 떨쳐버렸다. ‘흑인에 의한 역(逆)차별’은 단지 우려에 그쳤다. “그가 다른 메시지를 보냈더라면 이 나라는 불바다가 됐을 것이다.”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는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전임’ 백인 대통령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화해의 제스처였다.

“그는 남아공을 아파르트헤이트의 악(惡)에서뿐만 아니라 그 증오로부터 해방시켰다.”

만델라의 정치적 유산은 흑백(黑白)이 함께 피어나는 ‘무지개 공화국’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아프리카의 대부(代父)였다. 그가 창설한 아프리카개발공동체는 연평균 5∼6%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아프리카의 사자’로 포효한다.

마침내 ‘아프리카의 르네상스’의 서곡이 울렸고, 그가 가는 곳마다 “힘! 힘! 아프리카는 우리 것!”이라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 위대한 영혼의 퇴장은 아름다웠다.

5년 임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물러났다. ‘무욕(無慾)의 정치가’는 단지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기만을 소망했으니.

“당신이 세상에 준 가장 큰 선물은 관용의 정신이었다. 그것은 ‘검은 대륙’의 정치적 영감이었고, 미래의 희망을 틔웠다.”(빌 클린턴)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