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권력 자본론’…정치와 경제, 분리될 수 있을까?

  • 입력 2004년 6월 11일 17시 24분


코멘트
◇권력 자본론/심숀 버클러·조나단 닛잔 지음 홍기빈 옮김/292쪽 1만5000원 삼인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복잡한 세상을 하나 혹은 소수의 키워드에 기대어 단순하게 설명하고픈 욕구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분과 학문 체계’는 바로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일지 모른다. 이런 체계는 ‘푸는 자가 소아시아의 왕이 될 수 있다’는 고디아스의 매듭(Gordian Knot)을 칼로 베어 풀어버린 알렉산더의 지혜처럼,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준다.

경제학(저자들은 이를 ‘정치경제학’이라 부른다)에서 흔히 ‘정경분리’가 강조되는 이유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끊어짐 없이 정돈된 실타래가 필요할 경우 알렉산더의 행위가 어리석은 짓일 수 있듯이, 정치와 경제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것이 그 장점 못지않게 또 다른 한계를 내포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의심에서 출발한다. 물론 저자들은 ‘자본’이라는 키워드로 복잡한 세상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경제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알렉산더의 ‘지혜’까지 차용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정치영역을 권력관계로 대변되는 수직적 공간으로, 경제영역을 평등한 개인들이 물질적 행복을 위해 경쟁하는 수평적 공간으로 각각 이해했다. 이들은 이런 분리가 적어도 경제학의 초창기에는 개인들의 물질적 행복을 권력과 위계질서로부터 해방시켜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치와 경제가 점점 더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제학이 계속해서 정경분리를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저자들에게 자본은 단순히 평등한 개인들간의 경쟁과 관련된 경제적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회적 관계 전체를 지배하는 권력이며 자본축적은 바로 이 권력의 재생산 과정이다. 자본간 경쟁도 기존의 경제학에서 이해되는 것처럼 균형(또는 평균이윤율)으로 수렴된다기보다는 권력관계를 매개로 해서 끊임없이 자본간 격차를 확대하는 과정(차등화 축적)이다. 그렇다면 정경분리에 기초해서 자본을 경제학적 범주로만 취급할 경우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곧 정치와 경제를 통합시켜 이해해야만 자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만 복잡한 현실세계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들이 새로운 경제학을 주창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자본 개념을 통해서 복잡한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물론 저자들이 새로운 경제학의 필요성을 충분히 입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기존의 경제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문제를 설명할 수도 있는, 작지만 소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상호 가톨릭대 강사·경제학 shlee62@hanmail.ne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