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대담한…’ 여러 목소리로 풀어내는 책의 해석

  • 입력 2004년 4월 16일 1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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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책읽기/조희정·천정환·손유경·고지훈·박익순·김준우 지음/434쪽 1만4000원 이가서·퍼슨웹

마치 대담형식으로 진행되는 텔레비전 서평 프로그램의 인터넷 버전을 지면으로 보는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들은 인터뷰 전문 웹진 퍼슨웹(www.personweb.com)의 회원들이었다. 퍼슨웹은 의사소통의 확대를 통해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상호이해의 확장을 모색하는 소장 인문학자들의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1년여간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이색적인 서평 작업을 해왔다. 그것은 한 명의 필자가 풀어놓는 독백형식이 아니라 여러 명이 참여하는 대화체 형식의 서평이었다.

이 책은 그런 공동 서평작업을 확대해서 펼쳐놓은 것이다. 저자들은 2002∼2003년 국내에서 출간된 책 중 16권을 골라 이를 9개의 주제로 분류해 대화를 펼친다. 대화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2∼5명의 퍼슨웹 멤버가 참여하는 ‘인터리뷰(inter-review)’와 해당 서적 필자와의 ‘인터뷰’가 그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 책의 제목에는 ‘대담(大膽)한 책읽기’와 ‘대담(對談)한 책읽기’의 중의법이 들어있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그 이중적 접근법을 통해 소개된 책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신의 유년기 체험을 통해 한국 남자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고백한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푸른숲)에 대한 좌담에선 책의 내용을 각자의 가족사에 비춰본다.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집안의 가장이란 지위를 부여받았을 때의 당황스러움, 친구 아버지와 즐거운 토론은 가능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와는 그런 토론이 불가능함을 발견했을 때의 씁쓸함, 어머니와는 표준어와 사투리를 섞어서 대화할 수 있어도 아버지와는 사투리로만 대화할 수밖에 없는 언어사용에 숨은 권위주의에 대한 깨달음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확장된 인식은 다시 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증폭되거나 변조된다. ‘남자의 탄생’의 저자 전인권과의 인터뷰는 한국 사회의 폭력적 구조가 가족에서 출발한다는 정치학적 기획의도가 ‘성적인 관점의 해석’이라는 의미를 새로 획득하게 됐음을 보여준다.

이런 인터리뷰와 인터뷰의 이중 그물망에 잡힌 책은 이정우의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이룸), 김동광이 번역한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이다. 경영분야의 책에 대해선 경영서적 전문가인 구본형씨와 인터뷰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등 조선 미시사 관련 책 4권,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상형문자), ‘황홀한 사기극-헨젤과 그레텔의 또 다른 이야기’(이룸) 등은 인터리뷰만 이뤄졌다. ‘서평의 다성(多聲)화’라고 할 이런 시도에서는 화음을 이끌어내는 지휘자의 조율능력이 중요하다.

쇤베르크의 무조(無調)음악처럼 각 음(서평자)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억지 화음을 맞추지 않은 것이 이 책의 특색이긴 하지만 청중(독자)들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부담스러움도 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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