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19>卷三. 패왕의 길

  • 입력 2004년 4월 6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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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萬을 산 채 묻고①

장함(章邯)의 항복을 받고도 한 달이나 더 걸려 하북(河北)을 평정한 항우는 2세 황제 3년 8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서쪽 관중(關中)으로 드는 길을 잡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관중에 가까워질수록 진군의 저항도 거세 항우는 다시 한 달을 힘든 싸움에 바치고서야 신안(新安)에 이를 수가 있었다.

신안은 낙양(洛陽) 서쪽 100리요 함곡관(函谷關)을 300리 앞둔 땅이었다. 신안에서 또 한 차례 힘든 싸움을 치른 항우는 성을 얻자 그곳에서 며칠 군사를 쉬게 했다. 굳고 험하기로 이름난 함곡관으로 치고 들어가기 전의 마지막 숨고르기라 할 수도 있었다.

그 사이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사는 30만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다. 거기다가 장함이 항복하면서 데리고 온 진졸(秦卒) 20만이 있어 보살펴야 할 머릿수는 50만이 넘었다. 쉬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늦가을인 9월의 숙영(宿營)이라 진중에는 자잘한 일이 많았다. 군량이나 물자를 나르고 갈무리하는 일부터 바람서리를 막아줄 군막을 세우고 땔감을 모으는 일까지 시양졸(시養卒)만으로는 일손이 모자랐다.

초나라 군사들은 진작부터 그래왔듯 항복한 진졸들을 끌어내 그런 잡일을 시켰다. 첫날 신안성 남문 밖 벌판에 군막을 세우는 일도 그랬다. 창칼을 든 초나라 군사 대여섯명이 예닐곱 정도의 진졸들을 끌어내어 감시하는 꼴로 일을 시키는데, 초나라 군사들의 항졸(降卒) 대접이 여간 고약하지 않았다.

“야, 너!”

벌판에 흩어져 일하는 여러 패거리 중에서 초나라 군사 하나가 그렇게 소리치며 방금 판 땅에 기둥을 세우려는 어떤 진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멀뚱하게 돌아보는 진졸을 독기 서린 눈길로 쏘아보며 대뜸 창대부터 휘둘렀다. 엎드려 일하다가 창대에 등허리를 모질게 맞은 진졸은 비명과 함께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래도 분이 덜 풀렸는지 그 초나라 군사는 한동안이나 쓰러진 진졸을 때리고 짓밟다가 비로소 그 까닭을 밝혔다.

“나쁜 새끼, 이걸 일이라고 해? 그렇게 얕게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묻어도 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다른 초병 하나가 어이없어 하며 그 초병을 나무랐다.

“어이, 너무 심하지 않아? 그만 일로 왜 그래? 말로 더 깊이 파게 해도 되지 않아?”

그러자 진졸을 때린 초병이 이제는 이까지 부득부득 갈며 받았다.

“뭐? 심하다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저 진나라 악종한테 한번 물어보라고. 마읍(馬邑)에서 장성(長城) 쌓을 때 돌 하나 잘못 놓았다고 내게 어떻게 했는지.”

그런 일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하던 다른 패거리에게서도 일어났다. 역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진졸 하나를 초주검 시킨 초나라 군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옛적 구강(九江)에서 수자리 살 때 당한 원한 때문이었다.

“파수 서다 잠깐 졸았는데 저놈이 어떻게 한 줄 알아? 저도 졸병이면서 기강을 잡는다고 술 처먹고 밤새도록 내게 채찍질을 해댔지. 여길 봐. 아직 그때 흉터가 남았을 거야.”

때린 초병이 그러면서 옷을 벗고 등판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정말로 굵은 지렁이가 수없이 지나간 자국인 듯 끔찍한 흉터가 남아있었다.

글 이문열 그림 박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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