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국민으로부터의…’ 국민에서 벗어나야 내가 보인다?

  • 입력 2004년 3월 5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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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으로부터의 탈퇴/권혁범 지음/270쪽 9500원 삼인

“이제 ‘국민’이라는 집단 주술에서 벗어날 때가 아닌가…결사와 집회의 자유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나라에서 모든 형태의 집단에 들어가고 나오는 일은 자유의사에 맡겨져 있는데 왜 ‘국민’에서는 탈퇴할 수 없나?”

4년 전 한국사회의 금기 중 하나인 ‘민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저서 ‘민족주의와 발전의 환상’(솔)으로 논객들의 주목을 받았던 저자 권혁범씨(대전대 교수·정치학)가 이번에는 ‘국민’을 담론의 장으로 끌고 나왔다. 그는 ‘민족주의…’에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는 물론 탈식민적 저항적 민족주의도 민족 안팎의 다양한 개인의 해방과 자유 또는 자연 환경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었다. 한동안 ‘민족’이란 문제를 천착했던 그는 ‘민족’만으로 포착되지 않는, ‘국민’의 배제성, 억압성, 동질성 등에 대해 반성하면서 ‘국가주의’에 주목했다.

2003년 8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나라꽃 무궁화 대잔치’에 참여해 꽃으로 만든 대형 태극기 앞에서 뛰노는 어린이들. 권혁범교수는 “누구도 태어날 때 한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은 곧 일본의 국가주의를 향한 것이었다. 한국사회 내부의 국가주의에 대한 반성은 금기의 대상이었다. 권 교수가 지적하듯이 고난과 격동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겪으면서 한국인들에게 ‘국가’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하면서 ‘국가’에 대한 찬양과 숭배는 당연한 것이 됐고, 분단체제하에서 국가와 민족, 국민을 동일시하는 의식이 자리 잡았다. 또한 반공주의 독재체제하에서 국가에 대한 비판은 철저히 금기시됐다.

하지만 그는 이 시점에서 다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묻는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국민’이 아니라 주민, 시민, 혹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이 ‘국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 사회나 국제적 문제를 모색하고 해결하는 흐름이 커져야 하는 게 아닐까?”

권 교수는 국가를 “공공재의 창출과 배분을 주도하는 강제 권력으로 기능하면서 법적 제도적 일관성을 위해 ‘국민’을 하나의 획일적 기준에 정렬시키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정한 복종을 강제하는 외생적 메커니즘”이라고 정의한다.

국가가 이런 것이라면 일단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이란 의식이 자리 잡을 때 거기서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개인의 삶과 자유가 피어날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이라는 표현은 국가가 부과하는 의무를 정당화하면서 국가와 긴장 관계를 갖는 사회의 시민 의식이나 독립적 개체 의식을 억압하고 약화시킨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것은 ‘국민’ 의식이 해체된 지점에서야 들을 수 있는 ‘작은 개인들’의 ‘작은 목소리’다.

“‘국민’ 이전에, 혹은 ‘국민’을 완전히 떠나서 나 자신을 여성, 장애인, 노동자, 노인, 동성애자 등으로 먼저 인식하거나 그런 정체성을 우선시하는 게 꼭 분열적이고 집단이기주의적인가?”

국민국가 단위의 체제가 엄존하는 현실에서 ‘국가’나 ‘국민’을 부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의 신화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국사회에서 국가가 개인에게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한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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