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모피아 vs 노피아

  • 입력 2004년 2월 25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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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인사(人事)를 놓고 말들이 많다. 올해 임기가 끝나는 은행장 사장들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실상 첫 금융계 인사여서 하마평이 무성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뒷소문들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가까운 ‘이헌재 사단’이 힘을 얻고 있다거나 노무현 대통령과 지연 학연이 있는 인물들이 중용될 것이라는 얘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주 정찬용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이 부산 출신의 금융계 모 인사를 만난 뒤에는 이런저런 소문이 더 보태져 난무한다.

‘청와대가 금융계 인사를 직접 챙긴다더라’ ‘특정 지역 학교 출신들이 뜬다더라’하는 확인되지 않는 ‘카더라’ 통신류의 얘기가 대부분이다. 금융계에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는 반응이다. 국책은행의 한 임원은 “과거 이런 얘기들이 전혀 사실무근은 아니었다”며 헛소문은 아닐 것이라고 단언한다.

금융계의 관심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금융계의 지배세력이었던 재정경제부 출신의 금융관료, 이른바 모피아(옛 재무부의 영문 약자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금융마피아’라는 뜻의 은어)의 낙하산 인사가 종말을 고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모피아를 대신해 금융계를 장악할 세력은 누가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새로 발족하는 재경부 산하 주택금융공사 사장에 재경부 출신 인사가 밀린 것을 두고 은행가에는 ‘모피아의 낙하산 인사를 청와대가 막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과거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할 때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세력이 금융관료, 바로 모피아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금융계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노조의 배척을 받아야 했다.

그러기에 금융계에선 ‘모피아 견제’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 이가 많다. 노조를 비롯한 금융계의 박수를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공직사회 문화계에 이어 금융계도 지배세력의 물갈이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곧 금융계의 인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공기업에 사장을 추천하는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듯이 은행에도 행장추천위원회가 있다. 주주총회라는 공식 결정기구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금융계 인사가 공식기구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싶다.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왔다고 믿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한때는 ‘금융계의 황제’라고 불리는 사람이 대리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 예단하기 어렵다.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이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를 만났다는 사실이 현 정부가 택한 방식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어떤 식이든 능력과 전문성을 도외시한 ‘끼리끼리 인사’는 금물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과의 인연을 감안한 인사라면 그건 금융계 모피아 대신 ‘노피아(노무현 마피아)’ 인사라는 평가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은행과 금융회사에 대한 신용등급도 떨어지지 않겠는가.

금융계는 지금 전례가 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씨티은행이라는 세계 최고의 은행이 한미은행을 사들여 국내 금융시장의 최강자를 노리고 있고 부실 카드회사는 아직 신음 중이다. 이런 처지에 금융계 인사권을 전리품쯤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것이 또 다른 관치금융과 부실의 확대로 이어진다면 결국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박영균 경제부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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