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눈의 역사…' ‘눈’이 결국 인류를 멸망케 하리라

  • 입력 2004년 1월 16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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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눈으로 사유한다. 볼 수 없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그만큼 눈은 위험하기도 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인간은 눈으로 사유한다. 볼 수 없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그만큼 눈은 위험하기도 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눈의 역사 눈의 미학/임철규 지음/438쪽 2만2000원 한길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한다’는 신탁(神託)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복사뼈에 쇠못을 박아 산 속에 버려졌던 그는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돼 자신의 어머니를 아내로 취하게 된다.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비통해 하며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한다.

비극적 운명의 대가로 희생되는 것이 하필이면 왜 ‘눈’이어야 했을까? 저자(연세대 교수·영문학)는 이 사건을 “과학적, 이성적 사유를 통한 앎으로부터 지혜의 눈 또는 각성의 눈으로의 전환”이라고 해석한다. 오이디푸스의 실명은 단순히 비극적 운명에 절망한 자의 자학이 아니라 그 운명에 빠져들게 했던 이성의 초월이라는 것이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대학에서 정년퇴임하는 임 교수는 약 20년 전 관심 갖고 시작한 ‘눈’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하며 이 책을 세상에 내놨다.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낭만주의,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사상사와 미술사, 그리고 죽음과 구원의 문제까지 넘나들며 ‘눈’에 대해 던지는 저자의 지적 통찰은 종횡무진 거칠 것이 없다.

저자는 “눈의 중요성만큼이나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눈의 위험성”이라고 지적한다. “눈이 있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인식한다는 것이며, 인식한다는 것은 전체 중의 부분만을 파악한다는 것이기에 눈이란 진정 감옥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의 타자로 두지 않고 주체의 인식 틀 속에 가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제한은 존재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세상에서 주체와 대상 사이에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이런 대립과 갈등은 다시 비극을 낳는다. 개인의 개체의식이나 자의식을 근간으로 한 그리스 문화가 그들의 독특한 문학 형식으로 비극을 낳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의 전통을 잇는 서양과 달리 동양, 특히 불교에서 눈이 배타적인 대접을 받는다는 데 주목했다. 불상(佛像)들은 눈을 반쯤 감고 있거나 완전히 감고 있다. 대신 그 이마에는 둥근 제3의 눈이 빛을 발한다. 물리적 두 눈이 본 것은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감각의 눈을 초월하는 ‘지혜의 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지혜의 눈은 인식의 틀에 갇히지 않고 바라볼 수 있기에 비극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이미 ‘눈의 역사’다. ‘감각의 눈’은 ‘지혜의 눈’을 압도한다. 임 교수는 “눈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인간세계는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고 단언한다.

구원의 길은 없는가? 그에 따르면 통한의 눈물,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눈을 통해 역사의 파국 또는 인간의 종말은 ‘유보’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유보’일 뿐이다. 자신의 인식 틀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한 인간의 비극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20여년 동안 ‘눈’에 대한 연구 끝에 다다른 그의 결론은 너무도 ‘비극적’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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