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영철/산업 고도화, 정부 몫이다

  • 입력 2003년 11월 30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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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하반기부터 수출은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기업의 설비투자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최근엔 아예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그동안 수출-투자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더니 이제는 단절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기존 산업의 생산시설을 확대하기에는 늦은 감이 없지 않으며 차세대 성장산업에 뛰어들기에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 투자환경이 악화되다 보니 투자의욕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수출 느는데도 설비투자 감소세 ▼

왜 기업들이 미래 성장산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는가. 한국에서 투자의 주역인 재벌과 대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개혁과 중복투자 조정에 얽매이면서 새로운 생산기술과 첨단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를 미뤄 왔다. 이제 새로운 산업 품목을 사업화하는 과정에서 개척 초기의 진통을 겪다 보니 신규투자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투자는 어려운 반면 수익성이 높은 해외투자 기회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글로벌 경영에 성공한 재벌이나 대기업의 투자는 지역이나 나라를 가리지 않고 가장 수익률이 높은 곳을 찾아가고 있다. 성장률로 어림잡아 볼 때 중국의 투자수익률은 한국의 2배나 된다. 한국은 외국인에게 투자기피 지역으로 분류될 정도로 투자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경영을 할 수 있는 기업들이 중국이나 다른 지역의 해외투자로 눈을 돌린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기술개발 정책도 굴곡을 보이면서 투자 분위기를 개선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첨단기술 개발을 목적으로 시작한 ‘기술 벤처’의 육성은 ‘금융 벤처’의 양산으로 끝났고 그 결과 첨단부품이나 소재를 생산 공급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지 않으면서 미래 성장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대기업-중소기업의 협조체제도 형성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기술경쟁에서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이미 3∼5년은 뒤지고 있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벌과 대기업들이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다만 차세대 성장산업에 대한 투자는 회임기간이 길고 커다란 실패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자기자본이 넉넉해 위험을 흡수할 수 있는 재벌이나 대기업이 아니면 참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반면 많은 기업들이 이미 한 세대가 지난 정보통신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여러 산업의 기존시설을 확충하기에는 중국을 비롯한 다른 경쟁국의 추격이 두렵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해외로 눈을 돌리다 보면 투자계획은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계속 성장동력을 유지하려면 산업의 전반적인 기술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그것도 짧은 시간 내에 한 단계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의 중장기적인 경제발전 목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아니라 ‘미래 성장산업의 육성’이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의 기술 업그레이드 전략을 주도할 주체를 선정하고 기업이 하루빨리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투자의 길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해외로만 눈돌려… 더 방치땐 큰일 ▼

그리고 이 새로운 전략의 틀 속에서 노동, 교육, 기술개발, 국토의 균형개발, 농어촌, 환경, 소득분배 정책이 모두 재검토돼야 할 것이다. 대통령 산하에 특별위원회와 태스크포스팀이 6개나 되는데 그 어느 하나도 차세대 성장산업의 과제를 다루지 않고 있다.

산업의 고도화는 시장의 메커니즘에 맡겨 놓아서 될 일이 아니다. 선진국들마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계무역기구(WTO)의 감시와 규제를 피해 가면서 첨단산업의 육성과 보호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만 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이미 일본이나 다른 선진국을 추격하려는 열의나 의지는 보이지 않는 반면 중국의 추격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하는 분위기마저 나타나고 있다. 산업 고도화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이다.

박영철 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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