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백악관 상황실'…"테러첩보 입수 뉴욕공항 위험"

  • 입력 2003년 11월 28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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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상황실 /마이클 K 본 지음 신현돈 옮김/312쪽 1만2000원 북키앙

2001년 8월 6일 이른 아침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에 배달된 일일보고서 PDB(President's Daily Brief). 여느 날처럼 요점만 간결하게 정리된 문장들 속에는 ‘알 카에다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납치할 가능성…’이라는 한 대목이 있었다.

그로부터 1개월여 후인 2001년 9월 11일 오전. 백악관에는 전무후무한 ‘소개령’이 떨어졌다. 이미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WTC)가 비행기 충돌로 무너져 내린 뒤였고 워싱턴을 향해 항로를 벗어난 여객기 1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모두 황급히 백악관을 빠져나가던 그 시간, 대통령 집무실 오벌오피스(Oval Office)가 있는 웨스트윙 지하 1층에서는 그 모든 소음에서 홀로 떨어진 섬처럼 업무가 계속 진행됐다.

테러 가능성을 보고한 8월 6일 아침의 PDB를 정리했던 사람들, 즉 백악관 상황실(situation room)의 당직자들이었다.

● 케네디 특명

1961년 4월 공산 쿠바에서 탈출한 일단의 사람들을 쿠바에 재잠입시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키려던 ‘피그스만 계획’이 처참하게 실패한 뒤 국방부, 국무부, 재무부,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이 따로따로 운영하는 정보망과 각종 정보들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다. 이에 따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한 달 뒤 웨스트윙에 상황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상황실의 등장은 단순히 ‘정보종합이 낳는 시너지효과’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제의 성격을 ‘대통령 중심의 국정운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상황실은 대통령직(Presidency)의 권한을 증강시켰습니다. 상황실이라는 독자채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과 국가안보보좌관은 더 이상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 국장, 그리고 이들의 추종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거죠.”(로버트 게이츠 전 CIA 국장)

워싱턴의 어느 부처에서든 정보를 담당하는 관리가 지켜야할 기본원칙이 있다. ‘당신의 상관이 가장 나중에 아는 일이 없게 하라’는 것.

상황실을 대하는 대통령들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케네디는 “모든 것을 알아야만”하는 탐욕스러운 정보광이었다. 그 뒤를 이은 린든 존슨 대통령은 시도때도 없이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베트남은 어때?”라고 물었다. 훗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존슨 대통령이 상황실에 목을 덜 맸더라면 그의 집권 기간에 통치력이 좀 더 상승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CIA 국장과 중국 대사를 지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최고의 정보분석가. 당직자들이 “날씨상황이 나빠 인공위성 사진을 구할 수 없다”고 보고하면 “무슨 소리야, 방금 CNN의 크리스틴 아만푸어가 리포트를 하는데 얼굴에 해가 비치던 걸”하고 응수했다. 빌 클린턴은 CIA 국장이 구두보고를 병행하던 PDB 시간을 늘 어겼고 결국 서면보고로 대체했다. 그러나 서면보고서를 읽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고, 정확했다. 9·11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일일 정보브리핑과 PDB를 듣고 보는 사람의 범위를 확대했고 다루는 주제의 범위도 넓혔다.

● 다섯줄 안에 옮겨라

1급 기밀이 다뤄지는 곳이지만 웨스트윙 상황실 안의 회의실은 대중적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 영화 ‘에어포스원’이나 미국 NBC TV의 정치드라마 ‘웨스트윙’에 거의 매번 비치는 회의장소가 바로 이곳.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웨스트윙 상황실의 회의실은 멀티미디어 설비가 갖추어진 대형공간이 아니라 나무테이블과 10개 뿐인 가죽의자, 그 뒤로 실무자들이 앉을 수 있는 간이의자와 대형 텔레비전 모니터, 전화기 등이 고작인 전근대적 시설이라는 것이다. 포화상태인 웨스트윙에서 더 이상의 공간을 확보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곳으로 옮길 계획은 없다. 대통령 집무실이 웨스트윙에 있기 때문이다.

상황실의 당직자들은 CIA NSA 국무부 국방부 군에서 뽑힌 인재들로 일정 기간 파견 근무를 한다. 1일 3교대로 일하며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전쟁 테러 자연재해 등의 ‘상황’ 정보를 취합한다. 정보소스는 해외주재 대사관, 군사령부, CIA 각 지국 등의 다른 정보기관, CNN 등과 같은 뉴스매체에 이르기까지 광범하다.

상황실 요원들은 그때그때 짧은 메모나 요약서를 작성해 대통령, 부통령,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보좌관, 국가안보회의 위원, 기타 대통령이 지명하는 백악관 보좌관들에게 회람시킨다. 어떤 정보를 모으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정리하느냐’다. 논문 분량의 정보라 해도 ‘대통령이 볼 만한 글로 쓰되 문장이 다섯 줄 이상 넘어가지 않게…’ 요약해야 한다.

저자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 상황실장을 지냈다. 자신의 경험에다 전 현직 상황실장, 국가 안보보좌관들의 인터뷰를 충실히 보완했다.

대통령과 지근한 거리에 있지만 대통령 1인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의 고뇌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섹스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렸을 때 상황실장 케빈 코스그리프가 당직자들을 닦달한 말로 설명된다.

“모두 일에 몰두해. 대통령이 어찌되든 발칸반도에서 삶과 죽음은 계속 될 것이고, 사담 후세인은 유엔사찰단을 계속 괴롭힐 것이고, 테러는 계속된다고….” 원제 ‘Nerve Center’(2003년).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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