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경악한 조폭 사형수의 교도소 비리

  • 입력 2003년 11월 6일 14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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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로 사형 판결을 받은 조직폭력배 두목의 수감 생활에 얽힌 교도소 비리에 중국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교도소장 등에게 거액의 뇌물을 먹여 감형(減刑)을 받은 것은 물론 감옥 안으로 매춘부를 불러들이고 여자 교도관을 자신의 정부(情婦)로 삼았으며, 허위 진료서류로 치료감호 조치를 따내 교도소 밖으로 나간 뒤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

▽혐의=저우셴웨이(鄒顯衛·40)는 100여명의 부하를 거느린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최대 조직폭력 두목.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하기까지 한 저우는 잔인한 데다가 칼 쓰기에 능해 '표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전과 2범의 그는 1985년 교도소에 나온 뒤 다롄 경제개발구에 대형 나이트클럽을 열었고 이어 시내 곳곳에 야간업소와 음식점들을 채려 1000만위안(약 15억원)이 넘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

저우는 92년 10월 부하들과 함께 라이벌 조직을 습격해 두목을 엽총으로 죽인 뒤 해외로 도피했다가 경찰에 검거돼 95년 4월 살인죄 등으로 극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범죄조직의 정보를 경찰에 넘긴 공으로 2년간의 사형집행 유예를 받았다.

▽수감생활=그는 당초 랴오닝성 와팡뎬(瓦房店)교도소에 수감될 예정이었으나 아는 사람을 동원해 다롄교도소로 이감해줄 것을 교도소 관계자에게 부탁했다. 셰훙쥔(謝紅軍) 교도소장은 저우의 친구로부터 5000위안(약 75만원)을 받고 랴오닝성 감옥관리국에 요청해 96년 저우를 자신의 교도소로 옮겼다. 셰는 그 대가로 저우로부터 아파트 한 채를 상납받았고,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96년 가을 교도소측은 경비 조달을 위해 산하에 기업을 만들어 저우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때부터 저우는 회사일을 핑계로 교도소를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고, 교도소장의 벤츠 승용차로 매춘부를 교도소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셰는 97년 설을 앞두고 저우에게 떡값을 요구해 10만위안(약 1500만원)을 받았다. 그는 그 대가로 저우에게 교도소 내에 새로 집을 지어 그 곳에서 거주하게 했다. 침실 3개와 거실, 컬러TV, 냉장고 ,에어콘, VCD, 외부전화 등이 갖춰져 고급 호텔을 방불케 했다. 셰는 또다른 죄수 2명까지 저우에게 붙여 그의 시중을 들도록 했다.

저우는 교도소에서 왕 노릇을 하며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죄수들에게는 린치를 가했고, 충성하는 죄수들은 교도소장에게 얘기해 감형이나 가석방 등을 시켜줬다. 이 과정에서 돈을 챙긴 것은 물론이었다.

교도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저우에게 반한 한 여자 교도관은 그의 정부가 되기도 했다. 교도관은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였다.

▽감형=97년 7월 저우는 교도소장에게 감형을 요구했다. 셰는 부소장 등과 짠 뒤 저우가 교도소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는 서류를 꾸며 그해 11월 랴오닝성 감옥관리국으로부터 17년형 감형 조치를 받아냈다. 저우는 셰에게 또다시 10만위안의 돈을 건넸다. 98년과 99년 설날에 각각 10만위안과 15만위안의 떡값을 더 받은 셰는 99년 3월 또다시 저우의 형을 15년으로 감해주었다.

욕심이 생긴 저우는 99년 7월 셰에게 치료감호 명목으로 자신을 교도소 바깥으로 내보내줄 것을 요구했고 셰는 그를 정신질환자로 허위 서류를 꾸며 이듬해 3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수감 5년만이었다.

▽사형=저우는 교도소를 벗어난 지 한 달만에 또다시 라이벌 조직을 습격해 두목을 엽총으로 쏴죽였다가 10개월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다롄 법원은 그를 즉각 사형하도록 판결했으나 최고검찰원(대검찰청)이 그에 대한 보강수사를 명령해 조사 2년만에 교도소 비리의 전모가 드러났다. 저우는 올해 11월 3일 총살형을 당했다. 교도소 관계자들도 뇌물죄 등으로 처벌받았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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