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승호/여수産團 주민불안도 폭발 직전

  • 입력 2003년 10월 5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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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서 더 이상 못살겠어요. 빨리 대책을 세워 주세요.”

3일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호남석유화학 폴리에틸렌 공장에서 폭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이 치솟자 인근 중흥동과 삼일동 주민 1000여명은 집에서 10여km 떨어진 흥국체육관으로 긴급 대피했다.

중흥동의 한 주민은 “집이 공장과 4차로 도로 하나 사이인데 2, 3차례 폭발로 집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벽이 흔들려 황급히 빠져 나왔다”고 말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근본적인 안전대책이 불가능하다면 이주 대책이라도 세워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이 스스로 고향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국내 최대 석유화학공단인 여수산업단지에서 매년 폭발사고가 끊이질 않아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인화성과 폭발성이 강한 유독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의 시설이 낡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 옆에서 살고 있다. 1967년 702만평에 조성된 여수산업단지에는 현재 106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이들 가운데 70개가 석유화학, 정유 관련 업체들이다. 업체 가운데 30년 이상 된 대형 공장이 5개, 20년 이상 된 공장이 10개다.

올해 들어서만 3월 LG화학 에틸벤젠 제조공장 탱크 폭발사고 등 4건의 사고로 4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부상했다. 지난해에도 11건의 사고로 3명이 숨지는 등 70년대 이후 최근까지 200여건의 크고 작은 사고로 무려 1000여명의 사상자와 100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가 났다.

산업단지 입주업체들은 98년 외환위기 이후 설비 유지 및 보수 등을 담당하는 부서의 인력을 줄였다. 민주노총 여수시협의회 관계자는 “업체들은 보수 기간을 줄이기 위해 하청업체에 작업을 빨리 끝내도록 압력을 넣고 심지어 잔류 가스를 제거하지도 않고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비용을 줄이려고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를 방치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산단 주변 주민들의 불만은 폭발 일보 직전이다. 1996년 환경오염 피해로 인해 정부와 자치단체가 산단 인근 5개동 1791가구 5956명을 이주시키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이주 사업비 분담을 둘러싼 정부와 입주업체의 이견으로 이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사고가 잇따라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국과 업체들의 안전불감증이다. 종업원과 인근 주민들이 인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현 상황이 언제까지 방치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정승호 사회1부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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