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위성 1호 발사]“이제 우리 눈으로 우주를 본다”

  • 입력 2003년 9월 28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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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코스모스로켓에 실려 발사된 과학기술위성 1호의 모습. 윗부분에 우주관측용 ‘원자외선 우주분광기’가 설치되어 있다. -연합
러시아 플레세츠크 우주기지에서 코스모스로켓에 실려 발사된 과학기술위성 1호의 모습. 윗부분에 우주관측용 ‘원자외선 우주분광기’가 설치되어 있다. -연합
“트리 드바 아진(셋 둘 하나), 자푸스크(발사)!”

27일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800km 떨어진 플레세츠크 우주기지. 오전 10시11분(한국시간 오후 3시11분) 사령실의 명령과 동시에 지축을 흔드는 폭발음이 귀청을 때렸다.

한국 최초로 ‘우주로 눈을 돌린’ 과학기술위성 1호가 발사대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이 발사한 3기의 과학위성(우리별 1, 2, 3호)은 모두 지구관측이 임무였다. 그러나 이번 과학기술위성 1호는 은하의 구조와 진화를 밝혀낼 국내 최초의 우주망원경인 ‘원자외선 우주분광기’를 탑재하고 있다. 최초로 독자적인 우주관측에 나선다는 뜻이다. 정상 가동이 이뤄지면 국내 천문학과 우주과학은 ‘큰 걸음’을 내디딜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화염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은 로켓은 20여초 뒤 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발사대에서 750m 떨어진 관람석에서 발사 장면을 지켜보던 참관인들 사이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같은 로켓에 각종 위성을 실어 보낸 독일 영국 나이지리아 터키 등의 관계자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과학기술위성 1호의 제작과 발사 준비를 담당했던 채연석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원장과 심은섭 과학기술위성 총괄사업책임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SATREC) 임종태 소장 등 한국측 관계자들은 손을 맞잡으며 기뻐했다.

당초 26일로 예정됐던 로켓 발사가 연기되면서 이들은 긴장과 초조 속에서 24시간을 기다렸다. 이날 아침 한국 관계자들은 숙소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발사대로 향하던 중 갑자기 발사 취소 통보를 받았다.

취소 원인은 연료주입 밸브 이상. 그 순간 채 원장 등의 표정이 굳어졌다. 연료 계통에 결함이 생길 경우 심하면 발사 일정이 수개월 뒤로 늦춰질 수도 있기 때문. 특히 액체 연료 주입시 일어나는 누출 사고 등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플레세츠크 기지에서는 이와 유사한 사고가 1973년과 80년에 일어나 모두 57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참관인들은 기지 안으로 들어갈 때 모두 방독면을 지급받았다.

결국 27일 발사를 강행키로 했지만 KARI와 SATREC 관계자들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발사 30분 전, 로켓이 발사대에서 분리됐다. 발사 35분 후 고도 690km에 안착해 과학기술위성 1호를 성공적으로 분리했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나서야 한국 관계자들은 안도했다.

플레세츠크(러시아)=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총괄책임자 심은섭 박사 “위성 강국 도약 자신감 얻어”▼

“과학기술위성 1호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면 한국도 위성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과학기술위성 총괄사업책임자로 위성 제작과 발사 과정을 지휘해온 심은섭(沈殷燮.사진) 박사는 “위성 사업 후발국인 한국이 지금까지 8번의 위성 발사에 모두 성공하는 등 가장 단시간에 위성 분야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심 박사는 아리랑1호와 무궁화위성 사업에도 참여해 국내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심 박사는 “국가적으로 위성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경제성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소형 위성 분야에서 틈새시장을 찾는다면 우리도 위성 수출국이 되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저개발 국가도 위성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 시장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과학기술위성 1호와 함께 영국이 제작한 나이지리아와 터키 위성이 발사됐다. 또 베트남 등이 한국제 소형 위성 구매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기술부가 주도하고 있는 우주개발중장기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2015년까지 모두 20개의 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위성 사업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심 박사는 “내년에도 플레세츠크 기지에서 러시아 발사체(로켓)를 이용해 다목적실용위성 2호를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이 전수를 꺼리고 있는 발사체 분야 기술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개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내에 한-러우주협력협정이 체결되면 양국간 우주 분야 협력 가능성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심 박사는 “위성 발사에서는 20번 시도에 1번 정도 실패하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은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없어 새 사업을 추진할수록 관계자들이 중압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통신위성인 무궁화3호 후속 모델을 4호가 아닌 5호로 이름 붙인 것도 불길한 느낌이 드는 사(死)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플레세츠크 우주기지는…▼

과학기술위성 1호가 발사된 플레세츠크 기지는 세계에서 가장 보안이 심하고 공개되지 않은 군사 시설물 중 하나다. 북극이 가까운 백해 부근에 위치한 플레세츠크는 우주군의 통제를 받아 도시 전체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폐쇄도시’다. 4만명의 주민들은 대부분 군인과 관련 종사자 가족들이다. 플레세츠크 로켓 발사장에서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발사된 로켓의 60%, 인공위성의 40%가 발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머무르는 외국인은 안내 장교의 동행 없이는 숙소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현지 주민과의 접촉도 제한된다. 허가된 장소가 아니면 사진기와 휴대전화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호텔 창밖을 통한 사진 촬영도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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