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이철용/'모기지제도'의 성공조건

  • 입력 2003년 9월 25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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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지제도가 내년에 도입된다. ‘집값의 30%만 있으면 내 집을 갖게 해 준다’는 제도다. 70%는 장기 고정 금리로 빌릴 수 있다. 빚은 다달이 봉급의 30%를 떼어 20년 동안 갚아나간다. 본보 시리즈 기사가 나가자 많은 독자가 ‘참 좋은 제도’라고 반겼다.

그런데 장애물이 많다. 은행은 협조할 의사가 없다. 주택담보대출은 알짜 중의 알짜 자산이다. 이걸 수수료만 받고 유동화기구에 넘겨야 하니 속이 쓰린 것. 기관투자가들은 ‘금리가 높지 않으면 유동화증권을 안 사겠다’고 벌써부터 신경전이다. 최대 수혜자인 주택 수요자들도 아직은 정부 편이 아니다. 3∼4년 만에 은행 빚을 몰아 갚으면서 집을 넓혀 가는 관행에 젖어 고금리의 단기 변동금리 대출에 익숙해 있으니 말이다.

정부가 출자하는 유동화기구인 주택금융공사는 사서 고생을 해야 한다. 높은 금리로 빌린 돈을 주택수요자에게 저금리로 빌려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해를 본다면 납세자들이 가만있질 않을 것이다. 어려운 조건에서 이런 아슬아슬한 비즈니스를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모기지제도 실험은 한국주택저당채권유동화㈜를 통해 4년 동안 이뤄졌다. 성과는 변변치 못했다. 근본 원인으로 ‘여건 미성숙’이 지목된다. 이제 그 제도가 본격 시행된다. 작은 가게를 열었다가 장사가 잘 안되자 대대적으로 신장개업을 하는 셈. 가게 터는 그 자리 그대로다.

정책이나 제도에는 국민 의식을 바꿔 나가고 관행을 혁신하는 측면이 있다. 여건이 무르익기를 마냥 기다리라고 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명분이 좋더라도 전격 작전 식으로 낯선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문제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모기지제도를 10월에 본격 도입한다. 1990년대 초부터 해 온 오랜 준비작업의 결실이다. 그러니 한국과는 달리 ‘대선 공약용이다’, ‘가계대출 연착륙 수단이다’, ‘공무원 자리 마련 목적이 크다’는 등의 냉소는 나오지 않는다.

모기지제도는 한번 해 봐서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생각하기엔 너무 중요한 제도다. 지금부터라도 주택 수요자들의 의식을 바꾸고 은행과 기관투자가들의 장삿속을 파고드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한다.

이철용 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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