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출산 파업'

  • 입력 2003년 8월 28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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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유명 앵커우먼 다이앤 소여, 세계적 소프라노 제시 노먼. 이들의 공통점은 아이가 없다는 거다. 100여명의 성공한 미국 여성을 살핀 책 ‘삶을 창조하기:전문직 여성과 아이찾기’가 밝혀낸 사실이다. 저자 실비아 앤 휼렛이 내린 결론은 여성은 성공할수록 아이를 적게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마흔을 넘긴 전문직 여성 세 명 중 한 명은 ‘무자식 상팔자’인데 직업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어 아이를 안 낳았다는 이유 못지않게, 팔팔한 때 일에 몰두하다 보니 본인의 의도 및 성적 능력과 상관없이 ‘출산 파업’을 한 경우가 많았다. 즉 남성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간주되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 여성에게는 선택 또는 고통의 문제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남의 나라 걱정할 것 없다. 그래도 미국에선 1980년대 이후 미국이 주는 ‘사회적 자신감’ 덕에 출산율이 올라가고 세계 각지에서 이민이 몰려오면서 ‘젊은 아메리카’의 활기가 솟구친다. 출산율 감소로 ‘늙은 대륙’이 될 위기에 놓인 유럽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2세 출산을 책임질 수 없는 사회는 죄를 짓고 사는 사회”라는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 말마따나, 신생아 환영 수당을 주고 보육시설을 완벽하게 만드는 등 아기 탄생을 거국적으로 지원한다. 인구가 곧 국력이자 희망인 것.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이 여성 개인이나 집안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몫임을 모두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 ‘세계 최저’ 등 순위에 유독 민감한 한국인도 이 문제는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다. 이대로 가다가는 2023년부터 인구가 줄고 인구노령화와 노동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우려다. 언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더니 이제는 여자들 보고 아이 많이 낳으라고 독려한다. 마치 낳기만 하면 ‘그들’이 키워줄 것처럼.

▷아기의 사랑스러움을,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출산휴가 마치면 당장 갓난아기 맡길 곳이 없어 동동거리고, 임신하면 직장에서 책상을 빼랄까봐 불안해하고, 결혼하면 곧바로 아이냐 내 인생이냐를 놓고 빅딜을 해야 하는 이 땅의 여성들에게 현재의 출산장려책은 한가하기 한량없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면 출산장려책은 세계 최고여야 실효성이 있다. 국가도, 사회도, 심지어 남편도 아기 기르는 일을 엄마에게만 맡겨 놓는다면 지금 같은 ‘출산 파업’은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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