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두정엽 손상되면 실행증 걸려

입력 2003-06-08 17:28수정 2009-10-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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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뇌중풍)에 걸린 K씨의 곁에 보호자들이 몰려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응급실에 실려 온 뒤 계속 눈을 감고 누워 있기에 그들은 K씨가 의식이 없는,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호자들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K씨의 의식은 멀쩡했다. 그는 단지 ‘눈꺼풀 실행증’ 증세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실행증’이란 근육의 힘도 정상이고, 감각 이상도 없으며, 의식이 멀쩡한데도 특정한 동작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1900년 독일의 칼 리프만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눈꺼풀 실행증은 실행증 중에서도 ‘눈 뜨기’만을 하지 못하는 증세이다. 환자에게 ‘눈을 뜨세요’ 하면 뜨려고 애는 쓴다.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확연하다. 그러나 결코 눈이 떠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럴수록 눈이 더욱 감기게 되는 수도 있다. 다행히 이런 증세는 대부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회복된다.

눈꺼풀 실행증 만큼 흔한 것으로 ’입 움직임 실행증‘이란 것이 있다. 환자에게 “‘이’ 해보세요” “혀를 내밀어 보세요”하면 전혀 따라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하품을 하거나, 말하거나, 밥 먹을 때는 입과 혀를 잘 사용한다.

얼굴 이외의 근육 움직임에도 실행증 증세가 있음은 물론이다. 신경과 의사들은 실행증을 검사하기 위해 ‘경례’ ‘칫솔질하기’ ‘한 손으로 성냥을, 다른 손으로 성냥갑을 쥐고 성냥불 켜기’ 등 여러 가지 동작을 시켜본다. 실행증 환자들은 이런 동작을 수행하지 못한다.

‘옷 입기 실행증’도 비교적 흔한 증세이다. 손발이 멀쩡한 데도 환자는 옷을 입을 줄 모른다. 증세가 심하지 않은 경우 제대로 놓여진 옷은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옷을 뒤집어 놓거나 혹은 소매를 안으로 접어 넣어두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맨다.

실행증은 두정엽(마루엽)이 손상된 환자에서 발견된다. 특히 양쪽 두정엽이 손상된 경우에는 아주 쉬운 동작조차 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행하는 동작들은 운동중추, 감각 중추, 기저핵, 소뇌, 전두엽 등 뇌의 여러 부위가 합작해서 이루어 낸다.

두정엽 손상 때 실행증이 자주 보이는 이유는 두정엽이 이러한 많은 정보를 연결시키는 교차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실행증은 교차로의 신호등이 고장 나 교통이 마비된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김종성 울산대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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