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부시의 이너 서클

  • 입력 2003년 5월 30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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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벌써 4차례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가장 최근인 26일 저녁의 통화는 노 대통령이 먼저 제의해 이뤄졌다고 한다. 이전의 3차례는 부시 대통령의 요청으로 성사됐었다. 한미정상의 전화외교도 서서히 ‘대등한 관계’를 찾아가는 것인가. 최소한 2주 전 열린 한미정상회담으로 노 대통령이 먼저 전화통화를 요청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아 다행이다. 한미 정상이 낮과 밤이 엇갈리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은 양국 관계를 위해 좋은 일이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관계는 14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개된 두 사람의 행동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웃음을 머금은 채 흡족한 표정으로 경청했고 회견장에 들어오고 나갈 때는 노 대통령을 감싸 안는 듯한 자세로 등을 토닥였다. 우리 대통령이 똑같이 등을 두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장면이었다. 노 대통령이 “조금 오버했다”고 실토할 정도로 미국 칭찬을 한 것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부시 대통령이 한국의 새 지도자와 회담내용에 만족하지 않았다면 그런 친근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분명한 기준을 설정해 놓고 외국 정상을 맞는다. 정상회담을 진정한 우방관계 확인, 즉 ‘이너 서클(inner circle)’ 구축을 위해 활용한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이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상을 파격적으로 예우함으로써 미국에 협력하는 만큼 보상해 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의 개인목장에 초대받거나 백악관에서 국빈만찬 대접을 받는 것이 파격적 예우다. 부시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실무방문으로 마친 노 대통령에게 이너 서클은 아직은 머나먼 목표처럼 보인다.

▷이너 서클에 꼭 들어가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처럼 이너 서클에 들어간 뒤 저자세 굴욕외교를 했다며 국내에서 비난을 받는 지도자들도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친구들’과 논의하는 의제를 생각하면 외면할 수는 없다. 현재 이너 서클 회원들의 주요 현안은 북핵문제다. 소신을 굽히고 체면을 손상하면서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한반도의 운명이 타국에 의해 결정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이너 서클 가입이 여의치 않다면 ‘아웃사이더’ 신세라도 면해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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