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주식투자하는 금융당국자들

  • 입력 2003년 5월 18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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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정말 큰 문제입니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정책과 감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의 고위 간부들이 ‘녹음기를 틀어대듯’ 하는 말이다.

이런 말을 늘어놓던 고위 관료들이 요즘 적잖이 쑥쓰러워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 시민단체의 조사결과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 1급 이상의 고위 간부들 중 27%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 공개를 늘 염두에 둬야 하는 고위 공무원이 이렇다면 중하위급 공직자들의 주식투자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물론 경제 관료가 주식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증권거래법과 재정경제부령도 미공개정보를 이용하거나 증권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에 한해서 주식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경기침체기에는 증시부양을 위해 장관이나 차관이 직접 나서 주식을 사는 장면을 대중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직책이 갖는 윤리성이다.

이들 경제부처는 주식시장 관련 정책을 직접 다루고 있는 데다 고위직 간부가 어떠어떠한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그 종목이 귀족주 대접을 받는다.

요즘 증시에서는 “○○주는 금융감독위원장이 보증하는 종목”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다. 금감위원장이 가지고 있으니 안전한 투자종목이라는 얘기다.

주식을 가진 것으로 거명되는 관료들은 “공직에 들어오기 전에 (주식을) 산 것” “장기증권저축형태로 샀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억울해 한다.

금감원은 지난주 국민은행을 상대로 주식 불공정거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국민은행이 SK증권의 명의개서 대행기관이라는 준(準)내부자 기관인데도 SK증권 감자(減資)발표 사실을 사전에 알고 보유주식을 대량 매각해 손해를 피했다면 불공정 거래라고 판정했다.

경제부처의 고위 간부들도 시장에서는 국민은행 못지않게 ‘준내부자’ 이상의 힘을 갖고 있다. 이들의 주식투자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에서 고위 공직자로 취임하면 일정 기간내에 보유주식을 처분하거나 제3자에게 백지위임 신탁하도록 하는 윤리규정을 시행하고 있는 것도 그 ‘직위’가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서다.

진정으로 주식시장을 가꾸고 육성하려면 관련 부처 공직자들은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부분을 스스로 정리해야 한다. 자두나무 아래선 갓을 고쳐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동원 경제부 기자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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