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슬픈 바그다드'…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난사

  • 입력 2003년 5월 2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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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바그다드/권삼윤 지음/255쪽 8500원 꿈엔들

100만명의 바그다드 주민 중 80만명이 죽음을 당했다. 도시는 방화로 인해 폐허가 됐고 바그다드 내 보물들은 모두 약탈당했다.

1258년 2월 날랜 기병을 앞세운 칭기즈칸의 손자 훌레구가 20여일간의 포위 끝에 함락시킨 바그다드의 모습이었다. 훌레구는 아바스 왕조의 제37대 칼리프인 무스타심에게 500년간 비밀리에 소장하고 있던 왕조의 보물을 넘겨받고 왕의 예우에 따라 그를 죽였다.

그로부터 750년 가까이 지난 2003년 4월.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미영 연합군에 의해 바그다드는 또 한 차례 함락당했다. 사망자수는 적었지만 7000년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고스란히 담긴 이라크박물관의 소장품을 약탈당하고 도시가 폭격에 의해 폐허로 변하는 아픔은 큰 차이가 없었다.

문명비평가인 저자는 금세기 들어 또 한번의 슬픈 역사를 갖게 된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바그다드의 본격적인 역사는 7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바스 왕조의 두 번째 칼리프 만수르가 이곳을 새 수도로 정했다. 만수르는 “동쪽의 티그리스강과 서쪽의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는 이 섬은 세계 문물의 집산지이다. 나는 한평생 여기에 살 것이며 나의 후손들도 이곳에 살 것이다. 이곳은 틀림없이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예언대로 바그다드는 아바스 왕조 당시 당나라 장안,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과 함께 세계 3대 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영광은 몽골의 침입으로 끝나게 되고 이후 티무르제국, 사파비 왕조, 오스만튀르크 등에 의해 긴 점령의 역사를 갖게 된다.

유목 민족은 풍부한 농산물 집산지와 교역의 요충지인 바그다드 점령에 심혈을 기울였고 바그다드는 수난과 번영의 역사를 반복해야 했다. 그것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석유로 바뀌었을 뿐이다.

1300여년의 바그다드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의 이번 점령은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그다드의 주인은 역사를 통해 항상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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