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남달리 예민한’ 음악 애호가들 중에는 실내 공연장에서 자신이 앉을 자리까지 따지는 이들이 있다. 음향의 흡수 및 반사조건을 꼼꼼히 계산하며 음악 감상에 최적의 좌석을 고집한다. 이런 사람들은 티켓 값이 비쌀수록 음악 감상에 좋은 좌석일 것이라는 통념도 거부한다. 하지만 야외 오페라의 경우 아무래도 ‘귀’보다는 ‘눈’이 우선이다. 탁 트인 공간이 갖는 음향상 악조건을 크고 화려한 무대로 보완하겠다는 기획자의 의도가 다분하게 마련이니 음악의 질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전통 클래식음악 공연과는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5월에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한 ‘투란도트’(푸치니 작)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된다고 한다. 9월에는 또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을 무대로 ‘아이다’(베르디 작)가 선보인다니 우리도 이제 야외 오페라 무대가 낯설지 않게 됐다. 둘 다 대규모 합창단과 무용단에 웅장한 무대 세트가 동원되는 야외 오페라의 단골 작품인 데다 서울 공연에 상당한 제작비를 투입한다고 하니 볼거리가 풍성할 것 같다. ‘투란도트’의 경우 장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무대 세트보다 음악을 우선시하겠다고 한 만큼 음악성도 기대해 볼 일이다. 비싼 입장료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형 야외 오페라가 우리 문화의 폭을 넓히는 데에 긍정적인 보탬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일회성 무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문화산업 측면에서 볼 때 그렇다. 우리나라도 베로나처럼 연례적인 무대를 만들면 어떨까. 예컨대 전북 남원시의 광한루에 한국판 오페라 ‘춘향전’의 상설무대를 마련해 놓고 해외에서 관광객을 유치한다면 우리 문화도 널리 알리고 돈도 버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지금은 문화대국이니 관광대국이니 하면서 거창한 말잔치를 벌이기보다 베로나를 벤치마킹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문화를 무시하면 돈도 벌기 어려우니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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