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야외 오페라

  • 입력 2003년 4월 3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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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의 소도시 베로나는 야외 오페라로 유명한 세계적 명소다. 여름 3개월간 이 도시 중심부의 원형경기장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이 전 세계에서 매년 50만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들인다.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기원후 30년에 세워진 로마시대 유적에 앉아 오페라를 감상하는 ‘각별한’ 경험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핵심 포인트다. 밀려드는 관광객 덕분에 인구 20여만명의 소도시 베로나는 해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 순위 윗줄에서 빠지는 법이 없다. 베로나는 ‘오페라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인 셈이다.

▷‘귀가 남달리 예민한’ 음악 애호가들 중에는 실내 공연장에서 자신이 앉을 자리까지 따지는 이들이 있다. 음향의 흡수 및 반사조건을 꼼꼼히 계산하며 음악 감상에 최적의 좌석을 고집한다. 이런 사람들은 티켓 값이 비쌀수록 음악 감상에 좋은 좌석일 것이라는 통념도 거부한다. 하지만 야외 오페라의 경우 아무래도 ‘귀’보다는 ‘눈’이 우선이다. 탁 트인 공간이 갖는 음향상 악조건을 크고 화려한 무대로 보완하겠다는 기획자의 의도가 다분하게 마련이니 음악의 질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전통 클래식음악 공연과는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5월에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가 연출한 ‘투란도트’(푸치니 작)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된다고 한다. 9월에는 또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을 무대로 ‘아이다’(베르디 작)가 선보인다니 우리도 이제 야외 오페라 무대가 낯설지 않게 됐다. 둘 다 대규모 합창단과 무용단에 웅장한 무대 세트가 동원되는 야외 오페라의 단골 작품인 데다 서울 공연에 상당한 제작비를 투입한다고 하니 볼거리가 풍성할 것 같다. ‘투란도트’의 경우 장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무대 세트보다 음악을 우선시하겠다고 한 만큼 음악성도 기대해 볼 일이다. 비싼 입장료가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형 야외 오페라가 우리 문화의 폭을 넓히는 데에 긍정적인 보탬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일회성 무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문화산업 측면에서 볼 때 그렇다. 우리나라도 베로나처럼 연례적인 무대를 만들면 어떨까. 예컨대 전북 남원시의 광한루에 한국판 오페라 ‘춘향전’의 상설무대를 마련해 놓고 해외에서 관광객을 유치한다면 우리 문화도 널리 알리고 돈도 버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지금은 문화대국이니 관광대국이니 하면서 거창한 말잔치를 벌이기보다 베로나를 벤치마킹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문화를 무시하면 돈도 벌기 어려우니까.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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