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窓]‘仁術’과 ‘商術’

  • 입력 2003년 4월 27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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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윙’은 닭 날개를 매콤하게 튀긴 패스트푸드다. 미국 버팔로에서 시작됐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얼마 전 기자는 버팔로에 출장을 간 적이 있는데 현지인과 버팔로 윙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키가 180㎝는 됨직한 거구의 그 미국인은 손을 가로 저으면서 “정크푸드(junk food·쓰레기음식)다”고 잘라 말했다.

그로부터 2개월. 기자는 국내 병원을 출입하면서 재미있는 풍경을 발견했다. 내로라하는 대형병원 대부분이 ‘정크푸드’를 팔고 있는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서울대병원은 어린이병동 지하 1층에 ‘버거킹’을 입점시켰다. 몇 년 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버거킹’과 ‘파파이스’가 나란히 들어섰다. 2001년에는 서울아산병원에도 ‘파파이스’가 들어섰다. 한동안 뜸한가 했더니 지난달 강남성모병원에서 파파이스가 영업을 개시했다.

병원은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패스트푸드점을 유치하고 있다. 그리고 식생활이 서구화되면서 많은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에 이를 외면할 수 없다고 해명한다. 동시에 환자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부작용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잡지 ‘월간 애틀랜틱’의 기자 에릭 슐로서는 최근 저서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패스트푸드의 가장 직접적 폐해로 비만과 각종 질병을 꼽았다. 업체들의 ‘빅사이징’ 전략과 세트메뉴의 개발로 패스트푸드가 ‘헤비(heavy)’한 음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세트메뉴의 열량은 보통 1000Cal 정도다. ‘빅 사이즈’ 햄버거는 1개만 해도 800Cal 정도다. 한식 한 끼를 배불리 먹어도 700Cal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열량이다. 비만을 걱정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이 밖에 패스트푸드가 심장병, 당뇨 등 성인병을 유발한다는 얘기는 귀가 닳을 정도로 들었을 것이다. 탄산음료를 많이 마시면 인산염이 과잉으로 섭취돼 칼슘, 아연, 철분 등 미네랄이 빠져나가 뼈엉성증(골다공증)이 생길 수 있으며 치아의 가장 바깥 부분인 사기질의 경도가 떨어지고 충치가 생기기 쉽다.

이런 내용은 그동안 환자들에게 의사가 패스트푸드의 ‘해악’을 경고하면서 제시한 것들이다. 병원 내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하는 의사들 역시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다.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다.

그런 의사가 패스트푸드점을 드나들다 환자의 가족과 마주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의사 가운은 벗고 이용하는 게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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