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창]張國榮의 우울증

  • 입력 2003년 4월 13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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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본과 3학년 시절 신경정신과 실습을 나갔을 때다. 40대 중반 여성과 상담을 하게 됐는데 그녀는 웨딩숍을 운영하면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남편의 바람기로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상담을 끝낸 뒤 담당교수에게 환자에 대한 발표를 했다.

그 여성에 대한 가족사며 남편의 바람기며 한 시간 동안 환자에게서 들었던 내용을 꼼꼼히 정리해 발표했다. 발표를 다 듣고 난 뒤 담당교수가 그 환자는 자살 시도를 몇 번이나 했느냐고 물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얼른 대답을 못했다. 설마 ‘자살 시도를 했겠느냐’는 생각에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그녀는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었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이 홍콩 도심의 호텔 24층에서 몸을 날려 자살했다. 그 또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우울증은 국민 가운데 평균 15%가 앓을 가능성이 있는 흔한 질병이다. 우울증이 무서운 것은 자살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 중 우울증으로 진단 받는 경우가 80%나 된다. 우울증 환자 3명 중 2명은 자살을 생각하며 10명 중 1명은 자살로 인생을 마친다. 자살 시도는 여자가 남자보다 4배나 많지만 자살성공률은 남자가 여자보다 4배정도 높다.

우울증의 증세는 세상만사가 귀찮고 몸이 쉽게 피로하며 온몸이 아픈 것 같고 한숨만 자꾸 나오며 건망증도 심해지는 것이다.

또 과거가 후회되고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고 미래를 온통 비관적으로 보게 된다. 이런 증세가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되면 우울증이다.

자살 위험이 높은 우울증 환자들은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드러내곤 하므로 가족들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경기가 나빠지면서 실직자가 계속 늘고 있다.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에서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이 자살률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경제성장률이 낮을수록, 실업률이 높을수록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요즘이야말로 ‘자살 요주의 시기’이다.

우울증은 뇌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때문에 발병하는 질병이므로 병원을 찾아 약으로 치료하면 된다. 2002년 세계 매출 상위 10대 약 가운데 우울증 약이 2개나 포함될 정도로 외국에서는 쉽게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정신과에 간다면 우선 이상한 사람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현실이다.

한 미남 배우의 죽음을 슬퍼하기 전에 우울증의 무서운 본모습에 대해 정확히 알고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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