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크리스티의 한국인

  • 입력 2003년 3월 26일 19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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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고미술 시장에서 유통되는 한국 미술품의 양은 아주 미미하다. 크리스티와 함께 국제 경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소더비 회사는 이런 비유를 한 적이 있다. “중국의 고미술품이 ‘바다’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면 일본은 ‘강’에 해당되고 한국은 ‘개울’밖에 되지 않는다”고. 외국의 저명 박물관을 방문해 보면 아시아 국가 중에서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넓은 전시실을 배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한국 이름을 내세운 독립적인 전시실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섭섭한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 고미술품이 별로 안 보이는 것이 원래부터 한국에서 만들어진 미술품의 양이 적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1960, 7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 유산들을 너무 간단하게 폐기 처분한 탓도 없지 않다. 세계 시장에서의 ‘물량 부족’은 우리가 고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등 우리의 국력이 약했을 때 외국에 문화재를 빼앗겼던 억울함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외국으로 흘러나간 중요 문화재를 다시 찾아왔을 때 우리가 뿌듯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우리 미술품은 한국에 있으나 외국에 있으나 ‘한국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어렵사리 국내에 반환된 유출 문화재가 귀환 이후에 얼마나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순간에도 국내의 많은 문화 유산들이 개발우선 논리에 따라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훼손되거나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국보급 등 뛰어난 미술품이 아니라면 외국에서 전시되면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최근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외국 경매장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한국 고미술품이나 박수근 같은 근대화가의 그림이 엄청난 가격에 팔리고 있음을 전한다. 미술품을 구매한 사람의 신원은 절대 공개되지 않지만 그중에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 있는 비슷한 미술품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외국 경매장에서 의도적으로 가격 경쟁을 벌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높은 낙찰가라는 것은 한국인끼리의 가격에 불과하며 해당 미술품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한국 문화를 알리고 위상을 높이는 일은 우리의 ‘고정 관념’을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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