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기홍/'사오정' 과 '오륙도'

  • 입력 2003년 3월 16일 18시 37분


코멘트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학문수양에 대해 말하던 중 각각 나이 40과 50을 일컬어 한 말이다. 즉, “서른 살 때 입신하고(三十而立), 마흔 살 때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 살 때 하늘의 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이 단순하고 육체적 노동력이 생산의 원동력이 되던 시대. 그런 시대에 40년을 살면 어지간한 세상사는 이미 경험했을 터이니 사소한 일에 흔들릴 일이 없었으리라. 그러니 50년을 살아 하늘과 땅의 움직임을 이해했다 한들 누가 감히 시비를 걸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폐일언(蔽一言)하고 현재는 사오정과 오륙도의 시대다. 서유기의 사오정이 아니라 ‘사십오세 정년’의 사오정이고, 부산 앞바다의 오륙도가 아니라 ‘오십육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이라는 오륙도다. 농경사회의 튼튼한 기둥이던 40대와 50대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완전히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셈이다. 새 정부의 대통령비서진 인선을 보면서, 그리고 최근에는 검찰의 물갈이를 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공연히 목을 만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사람이 중년에 이르면) 이 세상에서 신도 악마도 없는 단지 인간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중년 이후’라는 책에 나오는 40대와 50대에 대한 찬사다. 젊은 열정이 지난 후에야 사물과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찬사가 정보화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의문이다. 386세대에 경륜 있는 사람이 없을 리 없고, 70대의 열혈남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사람을 능력이 아닌, 나이로 구분하는 것은 참으로 치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의 검찰 인사를 보면 무언가 답답함을 느낀다. 개혁의 기치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면서 보신을 꾀하던 정치검사를 그대로 두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정치검사가 아닌데도, 능력과 소신이 있는데도 단지 세월의 두께 때문에 물러나는 그런 일은 없을까? 더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면서 시달리던 우리의 40대와 50대가 이번 검찰인사를 보면서 더 움츠러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그들은 ‘중년 이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섈 위 댄스(Shall we dance)?’라고 말할 용기와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김기홍 객원논설위원·부산대 교수 gkim@pusan.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