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복수'…"테러는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것"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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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로라 블루멘펠트 지음 김미정 옮김/394쪽 1만원 하서

제목만 보고 처절한 복수담이 펼쳐질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선 안 된다. 부제 ‘희망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주제를 상징하는 단서. 아버지의 테러범을 추적해가는 주인공의 여정과 함께 복수와 정의, 중동 갈등의 악순환, 조국을 위해 테러범이 된 젊은이 등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틀로 정교하게 엮어놓았다. 실화면서도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 덕에 너무 소설같이 읽힌다는 것이 미덕이자 약점이다.

1986년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가 예루살렘을 산책하던 뉴욕 출신의 유대인(다비드 블루멘펠트)의 머리에 총을 쏜다. 범인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습격 사건을 저지른 과격분파의 일원. 피해자는 기적적으로 생존해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딸은 그렇지 못했다. 10여년 후 딸은 ‘복수’를 꿈꾸며 이스라엘을 찾아간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라고 배웠다. 테러범은 그런 내 신념에 구멍이 뚫리게 만들었다.(…) 나는 테러 행위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원하는 복수는 폭력 행위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그 테러의 가장 깊은 중심, 뿌리로 들어가보는 것이다.(…)나는 테러범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저자는 기자(워싱턴포스트 지국장)의 자격으로 신분을 감춘 채 테러범 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옥중 테러범에게 접근한다. 둘은 편지를 교환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마침내 테러범의 가석방 재판에서 가해자를 위해 저자가 자기 정체를 털어놓고 호소하는 대목에선 절로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러면서 나온 저자의 결론은 모두 참이다. 나쁜 유대인도 있고 나쁜 아랍인도 있다, 사람들을 직접 대면해 보면 막연한 겉모습과는 정말 다르다, 인간은 표적이 아니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저자가 발로 취재한 ‘복수에 관한 모든 것’. 인류학자 조셉 지나트는 ‘복수가 집단적 정체성의 궁극적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집단의 응집력이 강해지기를 갈망하는 우두머리는 복수를 부추기고, 고의적으로 긴장을 증대시킨다. 또 알바니아엔 복수의 룰을 담은 책 ‘규범’이 인기다. 15세기 편찬된 이 책에 따르면 복수에는 공간의 제약이 있어 상대의 소유지에선 총을 쏠 수 없다. 그래서 빗장을 건 채 평생 집안에 갇힌 신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보복과 복수의 차이? 우리가 할 때는 보복, 저들이 할 때는 복수.

개인이든 국가든 결단이 필요한 한계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다른 뺨을 내밀든지 ‘이에는 이로’ 가든지, 시대를 막론하고 둘 사이의 긴장은 영원하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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