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誤報

  • 입력 2003년 3월 13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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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신문제작을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오탈자(誤脫字)가 적지만 문선공들이 납 활자를 손으로 뽑아 조판을 하던 시절에는 실수가 다반사로 일어났다. 전쟁 중이던 1950년 8월 대구매일신문이 1면 톱기사 본문에 이승만 대통령(大統領)을 이 견통령(李 犬統領)으로 오식(誤植) 하는 바람에 사장이 구속되고 주간이 사임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신문에 ‘큰통령’이 ‘개통령’으로 나왔으니 권부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겠지만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실수를 두고 언론사 사장을 구속까지 한 것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54년에는 피란 수도에서 발행되는 부산일보가 ‘大統領’을 ‘大領’으로 오식해 정정보도를 내고 주의를 받은 적이 있다. 문선공들의 실수로 수난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신문도 자구책을 마련했다. ‘李承晩 大統領(이승만 대통령)’ ‘朴正熙 大統領(박정희 대통령)’은 납 활자 여섯 개를 하나로 묶어놓아 문선할 때 생길 수 있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했다. 언론은 신속성 정확성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지만 신속성과 정확성은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뉴스를 신속하게 보도하려다 보면 본의 아니게 정확성에 흠결이 왕왕 생기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보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악의적 보도’에 대해서는 차별 대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언론으로서 오보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통령이 말하기 이전에 언론 스스로 ‘오보와의 전쟁’을 다짐하고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실천해야 옳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말하는 ‘오보’는 오탈자 등 제작상의 단순한 실수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보’ 또는 ‘정확하지 못한 보도’의 의미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김진표 경제부총리에게 지적한 정황을 놓고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실에서 발행하는 ‘브리핑’과 대변인 발표가 다른 것을 보더라도 객관적 보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정계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기까지 우호적 언론도 있고 비판적 언론도 있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대선에서 이긴 뒤 처음 방문한 언론사와 첫 기자회견 매체를 보면 그의 정치 역정에서 형성된 ‘피아 매체’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제 ‘운동권 변호사’ 또는 ‘변방의 정치인’이 아니다. 격랑을 헤치고 대한민국호를 끌고 나가야할 대통령은 다양한 의견을 들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오보와의 전쟁’이 노 대통령의 정치 역정에서 생긴 ‘비판적 언론’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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