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無란 무엇인가… 0은 존재하는가 ?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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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 0 眞空(무 영 진공)/존 배로 지음 고중숙 옮김/494쪽 1만8000원 해나무

◇존재하는 무, 0의 세계/로버트 카플란 지음 심재관 옮김/304쪽 1만2000원 이끌리오

‘없음’ 혹은 ‘무(無)’란 무엇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가? 어디까지가 ‘무’이고 어디부터가 ‘유(有)’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듯한 질문을 보면서 지적 호기심이 마구 발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 사람도 있다. 위의 질문을 보며 두뇌의 회전과 심장의 박동에 이상 징후를 느끼는 사람은 일단 이 두 권의 책을 피하는 게 좋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며 지적 호기심이 동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들이 권하는 흥미있는 지적 탐구에 뛰어들어 볼 만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자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수백쪽씩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놓은 이 두 권의 책은 존재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음’에 대해 수천년 동안 추구해 온 탐구의 역사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로버트 카플란은 ‘0’이란 개념의 역사와 이 숫자를 둘러싼 지적 논의들을 활기찬 문체로 펼쳐놓는다. 한편 천체물리학자 겸 수학자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존 배로는 수학 물리학 철학 등을 넘나들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광범위하게 소개한다. ‘없음’을 이야기하는 두 저자는 모두 ‘제1장’이 아닌 ‘제0장’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존재의 출발점은 ‘없음’이므로.

“0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0을 렌즈로 삼으면 온 세상이 보인다.”(카플란)

‘0’ 또는 ‘무(無)’에는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없음’의 영역이다. 철학자는 인식하려 했고, 신비주의자는 상상하려 했으며, 천문학자는 찾으려 했고, 신학자는 믿으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없음’을 먼저 ‘보여준’ 것은 수학자들이었다. 그것은 바로 ‘0’이었다.

카플란에 따르면 ‘0’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인도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 마야 문명에서도 ‘0’의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0’의 개념은 어느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었고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인도 수학자들의 기여는 그들이 최초로 ‘0’을 독특한 기호가 아닌 하나의 숫자로 취급하고 ‘0’을 포함한 숫자들의 관계에 주목해 수준 높은 추상화를 이뤄내며 수학의 큰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아랍 상인들을 통해 서부유럽에 ‘0’이 전해지자 유럽인들은 그 안에서 마법과 음모를 읽어내며 주춤했다. 하지만 중세 유럽인들은 결국 그것을 ‘없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창조해 내는 신의 전지전능함을 표현하는 기호로 숭배하게 된다. 그리고 수백년이 흐른 지금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컴퓨터는 오직 0과 1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언젠가 ‘0’만 남는 세상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과학자들은 ‘없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했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없음’을 만들어내기라도 하려 했다. 독일의 오토 폰 게리케는 “진공은 불가능하다”는 무책임한 말로 2000여년간 서구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도전하며 1654년 ‘마르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을 시도했다. 반구를 연결해 진공의 상태를 만들고는 16마리 말의 힘으로도 이 반구를 분리시킬 수 없음을 보여주며 진공의 상태가 ‘존재’함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그러나 ‘진공(vacuum)’이 곧 ‘없음’일 수는 없었다. 진공상태에도 우주에 충만한 ‘에테르(ether)’가 있다는 신화가 오랜 세월 지속됐다. 그후 ‘에테르’의 신화를 깨뜨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이 등장하며 ‘없음’의 영역에 대한 추구는 이어졌고, 이제 소립자물리학부터 우주 전체를 논하는 천문학까지 다양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확인하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곳에서는 여전히 철학 종교 수학이 ‘없음’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수백쪽의 책으로도 다할 수 없었던 ‘없음’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겨진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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