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亞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24>고령화 사회

  • 입력 2003년 2월 2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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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 중 하나는 세대문제였다. 이른바 ‘2030’ 세대와 ‘5060’ 세대간의 대결로 대선을 해석하는 세대담론이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이 담론에도 비껴간 세대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년 이후의 세대, 즉 ‘6070’세대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위로의 수사일 뿐 오늘날 우리 사회 고령자가 직면한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인구학에서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일 때 고령화사회(Aging Society), 그리고 14% 이상일 때 고령사회(Aged Society)라 부른다. 우리 사회는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로 진입했으며, 2001년 현재 고령 인구는 전체 인구에서 7.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의 평균 고령인구 비율 14.4%보다 아직 낮은 수치지만, 2019년에는 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압축적 경제성장처럼 인구구성도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를 거쳐 고령사회로 이동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문제는 이 고령화사회가 낳고 있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고령화는 무엇보다 노동인구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생산성을 떨어뜨림으로써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 그리고 다시 사회복지 부담을 증가시킴으로써 정부 재정을 압박한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은 인류의 오랜 꿈인 수명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고령자 문제라는 새로운 난제도 안겨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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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의 가장 1차적인 요구는 지속적인 일자리와 건강한 생활이다. 특히 일자리 문제는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고령자 일자리 이슈에 대해서는 지난 대선에서도 여야 모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민주당은 연령 중심의 고용체계를 능력 중심으로 전환해 실질적인 정년연장을 추진하고 사회적 일자리 50만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나라당 또한 고령자 적합 직종을 개발하고 일정 직종을 노인 취업 우대 직종으로 지정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고령자고용 대책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 중 하나는 정부가 고령자고용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물론 고령노동자보다 생산성이 높은 청년노동자를 더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청년실업이 중요한 사회문제인 상황에서 고령자 취업을 확대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늘어나는 고령인구를 그대로 둘 수 없으며, 따라서 고령자고용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기업의 고령 노동자 수요를 늘리기 위해 각종 보상 대책을 추진할 수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해당기업에 보조금 지급과 세제지원 등 임금지원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호주는 1996년 고령자를 고용할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해고시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도입해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또한 정부는 장기적으로 정년연장을 포함해 고령자 고용을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 등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제안한 ‘임금 피크제도’는 고용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다. 임금 피크제도는 일정한 연령이 지나면 임금을 줄여가면서 고용을 유지하는 능력급제의 일종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 선택적으로 시행중이다. 이 제도는 고령자 고용을 촉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고령자 부양에 대한 복지 부담을 줄이고 연금재정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성장만을 목표로 돌진해 온 우리사회에서 고령화는 분명 새로운 사회문제다. 정보화와 세계화로 인해 세대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현재 고령자가 경험하는 소외감은 더 이상 개인적, 가족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어젠다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일자리를 갖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독립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정신적 독립의 최소 조건이며, 따라서 정부는 이에 대한 장기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대표집필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이재호 leejaeho@donga.com

▼선진국에선…▼

고령자 고용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 즉 남아있는 잔존능력에 대한 사회적 인정으로서의 인권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연령 중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능력 중심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보다 이 이슈에 일찍 직면했던 선진국의 대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정년 제도를 재검토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일찍부터 정년제도를 연장하고, 궁극적으로 정년제의 철폐 및 ‘연령차별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실질고용 연령을 조정한 것은 고령자 고용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대책이다. 일본의 경우도 1991년 ‘고령자 고용촉진법’ 제정 이후부터 60세 정년제를 확보했으며, 요즘에는 65세 정년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두 번째 대안은 임금 피크제도의 실시다. 일본의 경우 정년이 되면 신규재고용 계약을 다시 하는데, 이때의 고용조건은 최종급여의 약 50%선에서 3∼5년의 기간으로 이뤄진다. 이 기간이 지나 다시 재고용을 원할 때는 별도의 신규계약을 다시 한다. 이때는 대체로 최종급여의 약 25∼30%선에서 2, 3년간 주 3일 정도의 파트타임으로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임금 피크제도를 도입할 경우 60세 정년일지라도 68세까지는 고용이 보장되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적극 고려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대안은 기존의 노동시장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 다양한 일상생활 편의와 관련된 사회적 일자리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이다.

공동체 비즈니스(Community Business) 또는 공동체 일자리(Community Job)라 부를 수 있는 복지 간병인, 산모 도우미, 물품배달을 포함한 실버택배, 문화안내인, 숲 생태 해설가 등이 그 구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고령자가 원하는 한 다양한 지역 내에서 파트타임을 통해 적극적인 사회참여 기제를 만들고 소득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고령화사회에서 지불해야할 국가적,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변재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탁로소' 확대 보급하자▼

노인복지문제를 전통적 효(孝)가치관에만 의존, 개인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탁로소(託老所)를 확대 보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탁로소는 정부지원을 받아 치매나 뇌중풍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단기간 돌봐주는 시설을 말한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출근할 때 아이를 맡겼다가 퇴근하면서 찾아가는 탁아소와 비슷한 개념의 시설이다. 이웃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성인보호센터(Adult Daycare Center)라는 이름으로 80년대부터 널리 보급됐다.

국내 탁로소는 크게 주간보호시설과 단기보호시설로 나뉜다. 주간보호시설은 낮 시간 동안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봐준다. 단기보호시설은 가족이 하루 이상 집을 비워야할 때 노인에게 숙식을 제공하며 돌봐준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시립 용산노인종합복지관 1층의 주간보호센터. 용산구 일대의 거동이 불편한 노인 10여명을 돌보는 이곳 실내 풍경은 유치원과 흡사하다. 노인들의 얼굴사진이 붙어있는 사물함, 각종 놀이기구와 공예 작품 등이 전시돼 있다.

월∼금요일까지 오전과 오후로 나뉘어 공예, 음악, 미술, 원예 등 전문강사진의 강의가 실시된다. 오후 3시 이후에는 맞은편 헬스시설에서 물리치료도 받고 운동도 즐긴다.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2명의 상근 직원 외에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돕는다. 하루 5000원, 한달 10만원의 이용료를 받는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 위치한 은천노인복지관은 1층의 주간보호시설 외에 2,3층에서 25명 가량의 치매 여성 노인만을 돌보는 단기보호시설을 운영중이다. 빌라형 주택으로 지어진 이곳은 노인을 위해 화장실에도 문턱을 없애고 온돌을 깔았다. 이용료는 하루 1만2000원, 한달 36만원이다.

전국적으로 주간보호센터는 142개소, 단기보호시설은 37개소(2001년 기준)가 운영되고 있지만 태부족이다. 이병만(李炳娩) 은천노인복지관장은 “맞벌이 부부가 모시는 노인층의 연령이 높아지면 앞으로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며 “주간보호는 오전 9시∼오후 5시로 돼 있는 운영시간을 실제 출퇴근 시간에 맞춰 늘리고 단기보호도 최장 90일인 보호기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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