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관 사칭’ 검사가 몰랐다니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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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이른바 ‘병풍(兵風)’ 수사를 사실상 종결하면서 또 한번 국민을 우롱했다. 병풍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씨는 명예훼손 혐의에 수사관 사칭 혐의를 추가해 기소하면서 주임검사와 소속 부장에 대해선 ‘수사관 사칭을 지시하거나 묵인하지 않았고 사칭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며 무혐의 처리했기 때문이다. 이는 최소한의 법적 형식 논리마저 묵살한 것으로, 끝 모를 검찰권의 타락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재소자 신분인 김씨를 무려 8개월 동안 이틀이 멀다 하고 검찰청사로 불러내 보조요원으로 수사에 참여시킨 것만으로도 담당 검사들이 수사관 사칭을 처음부터 눈감아 줬거나 방조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세간의 상식이다. 그게 아닌데도 김씨가 검찰청 특별조사실에서 수의 대신 사복을 입고 피의자들에게 호통을 치고 검사실에서 버젓이 컴퓨터까지 사용했다면 소도 웃을 일이다.

때로는 정식 수사관조차 입회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피의자들을 조사하면서 자술서를 받기도 하고 ‘자백하면 잘 봐주겠다’며 거드름마저 피운 김씨 아닌가. 담당 검사들이 자신의 뒤를 봐주고 뒷일까지 책임질 것이라는 확신 없이 그런 월권과 자격 사칭이 가능하겠는가. 담당 검사들이 정말 김씨의 수사관 사칭을 알지 못했다면 검사로서의 자격 미달이고, 그렇지 않은데도 검찰이 담당 검사들을 무혐의 처리했다면 검찰로서의 자격 상실이다.

그러나 김씨가 주임검사로부터 주의를 받기도 한 점으로 미뤄볼 때 아무래도 후자일 것이라는 심증이 들어 더 께름칙하다. 검찰이 왜 그랬을까. 정치적 배려일까 아니면 집안사람 감싸기일까. 어느 경우라도 검찰은 더 이상 법 적용의 일관성과 형평성을 논할 자격이 없게 됐다.

그래서 검찰이 김씨만 구속기소하는 선에서 20여건의 고소 고발 진정이 얽힌 병풍 수사를 일괄 매듭지은 것도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 마치 다른 관련자들은 일절 처벌하지 않겠으니 대신 담당 검사들에 대한 선처도 양해해 달라는 주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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