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브루넬레스키의 돔'

  • 입력 2003년 1월 24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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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비좁은 거리의 길모퉁이를 돌거나 광장으로 나설 때 만나게 되는 산타마리아 대성당. 대성당의 돔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대표작이다.사진제공 민음사
피렌체의 비좁은 거리의 길모퉁이를 돌거나 광장으로 나설 때 만나게 되는 산타마리아 대성당. 대성당의 돔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의 대표작이다.사진제공 민음사
◇브루넬레스키의 돔/로스 킹 지음 이희재 옮김/244쪽 1만2000원 민음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마리아’라는 뜻). 피렌체의 상징이 된 산타마리아 대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하늘로 치솟은 돔 덕분이다. 1420년부터 1436년 사이에 건축된 이 돔은 르네상스 건축을 집약해 보여주는 첫 작품이자 지금까지도 가장 우아하면서 규모가 큰 돔으로 평가된다. 500여년 전 여러 전란과 치열한 암투의 와중에서, 과학적인 건축술이 채 확립되기도 전에 성공적으로 돔을 올릴 수 있었던 데는 한 건축가의 피와 땀이 배어 있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1377∼1446). 피렌체 태생의 무명의 금세공사 브루넬레스키는 돔 공사를 통해 고대 건축 양식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르네상스 건축을 꽃피운 선구자로 꼽힌다.

좁게 보면 이 책은 경이로운 돔(성당과 돔 위에 올린 첨탑은 각기 다른 사람이 맡았다)을 올린 건축가의 삶과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 공학적 업적을 다루고 있다. 이에 곁들여 작가는 치밀한 사료를 바탕으로 피렌체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 15세기의 사회상과 노동자들의 일상까지 손에 잡힐 듯 복원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데, 2000년 발간과 동시에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인문서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탈리아의 새로운 맹주로 부상하던 피렌체 공화국은 국력 과시를 위해 1296년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짓기 시작한다. 흑사병과 전쟁, 자금난이 겹치면서 공사는 자꾸만 지연된다. 설상가상으로, 거대한 돔을 애초의 설계안대로 올릴 수 있을 만한 기술도 없었다.

사업단은 1418년 돔 공사 방안을 공모해 가장 독창적 모형을 제시한 브루넬레스키를 건축장으로 임명한다. 1420년 돔 공사는 시작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맨 땅에 헤딩하기’식으로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석조 돔을 쌓기 위해 벽돌을 이용한 새로운 공법을 만들고 돔 공사에 활용할 기중기와 권양기 같은 중장비도 발명한다.

그는 건축가로서는 위대했지만 인간적으로는 괴팍하고 고집불통이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유명한 일화 한 가지. 어느날 마네토라는 목수가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브루넬레스키는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 마네토로 하여금 자신이 다른 사람으로 둔갑했다고 감쪽같이 믿게 만드는 술수를 부려 실컷 골탕을 먹였다. 또 불같은 성격으로 남과 함께 일하기 싫어한 그는 평생 오만에 가까운 자기 과신 속에 살았다. 누가 설계도를 엉망으로 만들거나 훔쳐갈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는데 실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되기도 했다.

그를 방해하려는 적대세력의 음모로 인해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돔이 완성됐다. 마침내 세상사람들은 한 점 유보 없이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적 재능을 인정했다. 여러 발명품과 목재 중심틀 없이 돔 공사를 하는 난해한 기술 등 모든 것이 그의 눈부신 성취로 평가됐다. 그때까지 찬밥 신세였던 건축과 건축가는 그의 명성 덕분에 르네상스 시대 문화 창조의 주역으로 인정받게 됐다.

예순아홉살 나이로 그는 눈을 감았고 대성당 안에 묻혔다. 피렌체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보다 세상을 떠난 그에게 더 큰 애정을 보였다. 비문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피렌체의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여기 잠들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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