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분별없는 열정

  • 입력 2003년 1월 3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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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없는 열정:20세기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마크 릴라 지음 /서유경 옮김/255쪽/1만2000원/미토

20세기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가 행해진 시대였다. 이런 범죄를 직접 행한 자는 정치가와 군인이었지만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주며 그 행위를 합리화해 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마크 릴라 교수(미국 시카고대·사회사상)는 독일과 프랑스의 사상가 6명의 지적 편력과 그들의 사상에 대한 검토를 통해 20세기 폭력의 역사 이면에 도사린 지적 폭력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는 이런 지적 폭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언제든 역사의 전면에 나타날 수 있음을 알려주려 한다.

카를 슈미트,쟈크 데리다, 미셸 푸코

이들의 지적 성취 과정과 사상 자체에 대한 진지한 추적과 분석은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사실상 그 내용은 단순하다. 이들 6명의 사상가는 나치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전체주의를 지지했는데, 이는 이들의 인격적 결함이나 피치 못할 환경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들의 철학 자체에 전체주의적 성향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서구 사상의 전통 전체를 재구축하겠다는 야망을 가졌던 하이데거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다는 나치의 결단을 자신의 지적 야심에 비견할 만한 고매한 결단으로 여겼다. 적과 자신을 구별하는 행위를 인간 생활의 본질이자 정치의 핵심으로 보았던 슈미트에게 유대인은 신의 뜻으로 정해진 대표적인 ‘적’이었다. 신학에 몰두했던 베냐민이 마르크스주의에 매료된 것은 천국에서만 얻도록 약속됐던 것을 지상에서 획득하려는 위험한 충동이 이미 그의 안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과 노예의 인정(認定)투쟁이 벌어지는 역사에서 노예가 승리를 거둔다고 보았던 코제브는 인간을 모두 평준화하며 동질적인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는 전체주의를 주장하게 된다. 푸코는 관습에 ‘도전’해야 한다는 지적 강박에 사로잡혀 급기야 광기 마약 자살 등 이른바 ‘한계-경험’을 추구했고, 1968년 5월 시위를 계기로 “의식을 각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무너뜨리고 또 획득하기 위해 투쟁한다”며 현실 변혁에 뛰어들었다. 이론 제도 체계 등 모든 것에 대해 알아들을 수 없는 해체를 계속해 오던 데리다는 논의를 통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에 ‘정의(正義)’를 설정하고 마르크스주의와 손을 잡았다.

그런데 릴라 교수의 이런 분석과 결론에는 너무도 단호한 전제가 놓여 있다.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전체주의는 나쁜 것이고 나치즘과 마르크스주의는 똑같은 전체주의라는 것이다. 그에게 마르크스주의는 곧 인간의 자유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스탈리니즘과 동일시되고 그것은 나치즘과 다를 것이 없다. 그는 권력과 체제에 끊임없이 맞서는 푸코과 데리다조차 마르크스주의에 호의를 보인다는 이유로 나치 협력자와 동일시한다.

사실 전체주의적 성향은 철학의 오래된 ‘본질에 가까운’ 특성이다. 철학은 실증적 지식으로 검증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논리적 상상력’으로 메우며 세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불안을 위로해 왔고,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전체주의적 체계를 세우려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런 체계는 끊임없이 도전 받고 붕괴되지만 그런 ‘논리적 상상’의 과정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설계하는 데 기여한다.

전체주의의 위험에 대한 경계는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이지만, 결론에 전체주의적 유토피아의 흔적이 보인다고 그들의 철학을 통째로 난도질한다면 사실상 살아 남을 철학은 거의 없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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