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떠나는 이 후보에게도 박수를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43분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정계은퇴는 모처럼 정치지도자의 정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 채 정치적 회한을 접은 그에게 충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대쪽 이회창’의 7년 정치실험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그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고 정치적 부침 속에서도 절제를 잃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강직한 성격 때문에 그는 한국적 정치현실에서 끝내 ‘진짜 정치꾼’이 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공과나 역량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회창식 정치’가 한국의 정치풍토 개선에 기여한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집권여당 후보와 거대야당 후보로서 두 차례 치른 대선이 적어도 그 이전과 달리 ‘돈 잔치’ 선거가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문화를 한 단계 올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대선 패배 이후 처음으로 권력의 울타리를 벗어난 한나라당을 잘 추슬러 집권세력에 대한 견제기능을 충실히 수행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보스정치를 속성으로 하는 3김과 간단없이 대립한 그는 3김시대 종식의 선봉장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3김과 동시에 역사의 무대로 퇴장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적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제 국민은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야인으로 돌아간 그는 더 이상 패자가 아니다. 1144만표라는 결코 작지 않은 정치적 자산을 갖고 있는 만큼 그에게는 우리 사회의 영향력 있는 원로로서의 역할이 아직 남아 있다.

한나라당도 패배감에서 속히 벗어나 ‘이회창 이후’를 대비한 새로운 리더십 창출에 나서야 한다. 시대변화에 부응해 ‘합리적인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는 건강한 야당으로 거듭나 집권세력의 일탈을 제어하면서 5년 후를 대비해야 한다. 대선에서의 패배가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부여한 원내 다수당으로서의 책무는 상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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