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7시 43분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김선욱 지음/245쪽 1만2000원 푸른숲

이제 막을 내린 16대 대선, ‘정치공연’에서 후보들은 연기자로, 유권자들은 관객으로 각기 역할을 분담했다. ‘표현’과 ‘소통’이 한껏 드러난 행사였다. 민심을 헤아리느라 분주했던 후보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유권자들의 ‘진지한’ 모습은 정치판단이 얼마나 어려우며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시민정치의 시대를 열어야 할 시점에 출간된 이 책은 정치판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폭넓은 이해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정치판단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만, 저자는 ‘이야기 글쓰기(story-telling)’ 방식으로 책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있다. 이 책은 외형적으로는 9장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집필의 의도와 내용 전개를 고려하면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 시대에 왜 아렌트를 읽는가를 제기한 1장은 독자들의 관심을 제고하는 프롤로그에 해당된다. 2∼4장은 아렌트 판단이론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소개한 도입부에 해당된다. 저자는 아렌트가 정치판단이론에 애착을 가졌던 배경을 이야기하고(2장), ‘정치’의 새로운 개념을 이해해야 정치판단을 언급할 수 있다는 아렌트의 입장을 고려하여 ‘인간의 조건’ 등 아렌트의 저서에 소개된 행위자 관점의 판단이론을 조명하고 있다(3∼4장).

반면에, 전개부에 해당되는 5∼6장에서는 관찰자 관점의 판단이론을 조명한 ‘칸트 정치철학 강의’를 중심으로 저자의 심도 있는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즉, 판단이론의 구조와 특성을 제시한 5장에서는 베이너와 번스타인 등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관찰자의 판단과 행위자의 판단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아울러 판단이론의 소통 개념과 그 특징을 고찰한 6장에서는 “판단작용이 논증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게 아니라 동의를 호소하는 것”이라는 아렌트의 입장을 고려하여 정치판단에서 ‘표현’과 ‘소통’의 계기를 둘러싼 논쟁을 치밀하게 해부하고 있다.

재현부에 해당하는 7∼8장에서 정치판단의 발현이 왜 중요한가를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위해 시민성을 담지한 ‘세계관찰자’의 입장, ‘시민정치’의 가능성으로서 정치가를 좌우하는 시민의 판단기능에 주목하고, 특히 문화이론으로서 판단이론을 특이하게 조명하고 있다. 결론에 해당하는 9장에서는 정치의 자율성 확보가 문화시대의 소통과 정치윤리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또 다른 논의를 위한 여지를 남기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정치판단이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며 시민정치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를 번역 출간한 바 있는 옮긴이의 정치판단이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돋보이는 저서다.

홍원표 한국외국어대 강사 정치철학 hongwonp@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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