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4천억 갚으면 의혹도 없어지나

  • 입력 2002년 12월 2일 18시 22분


4000억원 증발의혹을 받고 있는 현대상선이 자금난에 몰려 알짜배기 사업인 자동차 운반사업부문을 해외에 판다니 안타깝다. 대북 지원인지, 계열사 지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정경유착 의혹에서 비롯된 부실 때문에 수십년간 키워온 우량사업을 해외에 넘긴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경유착의 고리만은 끊겠다고 장담해 온 현 정권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정부는 반성은커녕 은폐만 하려 들고 있다.

현대상선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굴지의 우량 해운회사였다. 5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에 3000억원대의 이익을 올리던 기업으로 은행들이 서로 거래를 하려고 경쟁할 정도로 재무구조도 건실했다. 이런 기업이 대북송금이니, 금강산 관광사업이니 하는 본업과 다른 사업에 돈을 대느라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수익성 좋은 사업부문을 해외 컨소시엄에 넘기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다.

4000억원 증발 의혹은 현대상선의 부실원인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현대상선 사장에게서 정부가 실제 채무자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총재의 증언까지 나왔다. 절차를 무시한 산업은행의 불법대출과 당시 산업은행총재였던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의 계좌추적 거부는 더욱 의혹을 짙게 했을 뿐이다.

정부는 4000억원 증발의혹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산업은행이 대출해준 돈을 돌려받았으니 문제가 없어졌다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된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는다고 해서 4000억원 증발 의혹 자체가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이 금융감독규정을 어기며 변칙적으로 대출해줬는데도 계좌추적을 거부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를 끝내고도 그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는 감사원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들 기관이 4000억원 증발 의혹을 얼버무리려고 한다면 추후에 더 큰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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