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용불량사회 정부 책임 없나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8시 30분


신용불량자가 250만명을 넘어 사상최대치를 기록한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지난 7월 정부가 사면조치를 통해 23만여명을 제외했는데도 불과 4개월 만에 다시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미 사면된 사람까지 합치면 신용불량자는 이보다 더 많다. 게다가 신용불량자 한 사람당 평균 3.4건이나 불량기록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이 간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은행에 가계대출을 줄이도록 종용하고 있고 은행들은 금리마저 올리고 있어 은행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연체자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마저 국내 은행의 부실을 걱정하기에 이르렀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 지경까지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근본 책임은 정부에 있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는 지난해부터 내수위주의 경기부양책을 폈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풀린 돈은 소비를 자극해 경기를 부추겼지만 가계 빚도 함께 커지게 됐다. 국민을 빈털터리 채무자로 만드는 데 정부가 앞장선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내놓은 신용불량대책도 때를 놓쳤고 명분만 그럴 듯했다. 뒤늦은 가계대출 축소와 금리인상은 가계부담을 키웠고 신용불량자 사면, 개인워크아웃제도의 도입 등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신용불량자 사면조치는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해 오히려 신용불량자를 늘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정부는 책임을 지기는커녕 실상을 감추려 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은행연합회가 매달 발표하는 신용불량자 통계를 분기별로 발표하도록 정부 관계자가 요구했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다. 정부는 선거를 의식해 그런 행동을 하기 전에 대책수립에 나섰어야 했다.

이제 우리 경제는 또 다른 경제위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다음 정권은 싫든 좋든 이렇게 신용불량에 빠진 경제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현정권은 신용불량사회를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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