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식인의 삶 ´인텔리겐차´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7시 18분


◇인텔리겐차/장석만 고미숙 윤해동 김동춘 퍼슨웹 지음/398쪽 1만5000원 푸른역사

“제가 주로 택하는 질문 방법은, 근대성의 체제하에서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을 허물어뜨려 낯설게 만들어버리는 겁니다.”(장석만)

“근대 지식인은 지식과 일상을 분리시킴으로써 자기 근거를 확보했고, 근대 학문은 이걸 분리시킴으로써 치명적 한계에 봉착했죠.”(고미숙)

“근대 역사학은 전면적인 위기 상황입니다. … 기본적으로 ‘실증에 기반한 객관성의 신화’와 ‘근대적 진보관에 대한 믿음’ 이 두 가지에 대한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윤해동)

“학자와 일반인은 의식의 수준이 다릅니다. 학자는 아예 자기 주장만 하면서 실천에는 개입하지 않거나, 아니면 목소리를 좀 낮춰서 사회운동을 택해야 합니다.”(김동춘)

종교학의 장석만(한국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고전문학의 고미숙(‘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 연구원), 역사학의 윤해동(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사회학의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듯이 (물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이들은 각각 자기 분야에서 독특한 자기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있지도 않은 ‘전통’과 ‘정통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한국 학계에서 고답적으로 규정된 틀을 넘어 연구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며 분과학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다양한 학문 형식을 실험하며 학문과 실천을 하나로 묶고 있다. 이들의 학문은 대학 밖의 학문공동체나 사회운동을 통해 실천되고, 그 실천은 삶 속에서 검증되어 다시 학문의 형식으로 실천된다. 이들은 이미 학계 안팎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을 질시하면서도 그 눈길을 떼지 못하는 직업적 지식인군도 상당수 팬으로 확보하고 있다.

인터뷰 전문 웹진 ‘퍼슨웹(www.personweb.com)’이 이들과의 인터뷰를 기획해 책으로 묶어냈다. 기획의 변은 “선배들이 지천명(知天命·50세)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만나 20대의 방황과 30대의 열정을 듣기 위함”이라고 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니기 시작해 학생운동과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운동세대의 사이에 끼인 이른바 ‘낀 세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1990년대 이후 이념에 대한 환멸과 새로운 지적 환경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학문과 실천의 길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기획자들은 이 책의 제목을 ‘인텔리겐차’로 정했다. 한편으로는 매우 ‘인털렉추얼’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상당히 과격하게 느껴지는 제목이지만, 이 네 사람을 묶기에는 대단히 적절한 이름이다. 이 책에서는 인텔리겐차를 이렇게 정의한다.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역사를 하나로 묶으려고 시도하는 이들.”

인터뷰라는 방식 또한 지식과 삶을 떼어놓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 네 사람을 펼쳐보여주기에 매우 적절하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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