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IMF가 재경부 상관?

  • 입력 2002년 11월 25일 18시 30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꼭 5년이 된 이달 21일 오전 10시반. 폴 그룬왈드 IMF 서울사무소장이 정부과천청사 재정경제부 기자실에 들어섰다.

이에 앞서 그룬왈드 소장은 전날 밤 재경부 공보관실을 통해 다음날 기자간담회를 갖겠다고 통보했다. 당연히 기자들은 ‘IMF 5년’과 관련된 메시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은 조흥은행 매각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겠다”고 말을 꺼낸 뒤 미리 준비해온 성명서를 읽어나갔다. 요지는 ‘IMF는 한국 정부의 조흥은행 지분 매각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들이 “왜 꼭 지금 팔아야 하느냐”고 묻자 “지금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금 팔지 않으면 더 이상 좋은 조건으로 매각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기에서 조흥은행 조기 매각이 옳으냐, 그르냐를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어느 쪽이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를 둘러싸고는 논란이 많은 미묘한 사안이다. 문제는 그룬왈드 소장의 기자간담회가 나온 절차와 방식이 무언가 개운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한국은 IMF로부터 빌린 돈을 지난해 모두 갚아 ‘IMF 졸업’을 했다. IMF와 정책협의는 하지만 구속력도 없다. 이런 가운데 이 기구의 서울사무소장이 논란이 있는 특정사안에 대해 공개발언을 통해 한국정부의 입장에 대한 ‘응원’을 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기자간담회가 이뤄진 과정도 석연치 않다. 재경부 금융정책국 관계자는 “IMF의 기자회견을 요구하지 않았고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재경부 간부는 “IMF가 조흥은행 지분을 가진 것도 아닌데 재경부의 요청 없이 기자회견을 했겠는가”라며 씁쓸해했다.

그룬왈드 소장은 재경부 청사 521호를 사용한다. 변양호(邊陽浩) 금융정책국장이 사용하는 515호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두 사람은 수시로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부가 언제까지 청사 안에 IMF 한국사무소를 무료로 제공해야 하는지, 또 재경부 고위당국자들이 과거 미군정 고문을 ‘모시듯’ 해야 하는지도 한번 생각해볼 때가 됐다. 그룬왈드 소장은 IMF에서 과장보(補)급이다.

김광현 경제부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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